TV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바닥을 치며 분해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마블 영화들에 대한 TMI를 묻는 퀴즈에서 10문제 중 2문제를 틀렸다는 것이다. 퀴즈 동영상을 다시 돌려보는 아이를 따라 질문 내용을 들어 보니 질문들이 너무나 지엽적인 것들이어서 나로서는 이런 질문을 하고 답을 맞히라는 것 자체가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아이는 오히려 자신의 공부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순순히 반성 모드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도 마블 영화들과 드라마와 코믹스에 대해 설명해 주는 동영상을 샅샅이 찾아 거의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봤는데 앞으로는 마블에 대한 것이라면 티끌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기세다.
초2는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시험 전날 집에서 시험 볼 문장들을 한 번씩 써 보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는 평균 두 번씩 울고불고하는 큰 떼를 쓴다. 아들은 글씨 쓰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 10개의 문장은 아이 입장에서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치게 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한 문장을 쓰고 엎드린 아이를 어렵사리 일으켜 두 번째 문장을 쓰게 하면 책상 위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세 번째 문장을 쓰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삐질삐질 눈물이 새어 나오다가 아예 침대에 엎어져 엉엉 울기 시작한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지쳐서 잠깐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아이가 나가지 말라고 꽥 소리를 지른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다. 해야 하고 잘해 내고 싶지만 너무나 하기 싫은 두 가지 마음이 아이 안에서 싸우는 동안 엄마가 옆에서 같이 그 시간을 버텨 줘야 한다. 결국 아이는 어찌어찌 10개의 문장 쓰기를 끝내고 모자는 축구 경기 연장전 승리를 한 것마냥 뿌듯한 마음으로 하이파이브와 포옹을 한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과정은 이리도 다르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시험을 본다면 모두 100점을 맞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자동차 브랜드와 모델명을 외우고 있고 어떤 아이들은 과자와 라면의 종류를 꿰고 있으며 수많은 걸그룹 멤버들의 이름과 특징을 브리핑할 수 있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 사이에는 어른들이 사소하고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수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나는 아이들이 그것에 들인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것이 학교 교과 과정에 없고 시험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노력이 무시돼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버티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인생에는 둘 다 필요하고 각각에서 얻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고 어른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