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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티브스피커 Dec 07. 2021

"우리 엄마는 마흔여덟 살인데 아줌마는 몇 살이에요?"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엄마 집에 왔다. 그 후 지금까지 아이와 나와 엄마가 함께 살고 있다. 애 아빠와 살던 집에서 엄마 집은 그리 멀지 않다. 엄마가 아이를 돌봐 주셨기 때문에 일부러 엄마 집 근처로 이사를 온 것이다. 엄마 집과 어린이집과 (이제 아빠 집이 된) 전에 살던 집을 꼭짓점으로 해서 선을 이으면 한 변이 길고 한 변이 짧은 삼각형이 된다. 어린이집이 다소 멀어져서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았고 굽이 굽이 골목 안에 있는 어린이집까지 다니는 버스도 없어서 아이는 아침마다 할머니와 택시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야 했다. 택시를 타면 보통 기사 할아버지가 “아이고 귀여워라. 몇 살이야?”하고 말을 붙인다. 그럼 아이는 기사 할아버지 뒤통수에 대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엄마 아빠가 싸워서 저는 엄마랑 집을 나왔고 지금은 엄마하고 할머니 집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택시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는 거예요.” 기타 등등. 기사 할아버지가 다음 말을 찾느라 느끼는 난감함이 뒤통수에도 묻어났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계면쩍어 아이 말을 돌리거나 괜스레 창밖만 바라봤는데 나중에는 매일 겪는 일이라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옆에서 듣고만 있게 됐다. 6개월 동안 탄 택시의 수가 적지 않으니 그 동네 위주로 운행하는 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택시를 타고 등원하는 아이의 사정을 알게 됐을 것이다. 아이는 매일 지치지도 않고 그 얘기를 했다.


별거 후 금방 이혼이 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정리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그 기간은 모든 것이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사람 말고는 별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데리고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나는 미리 상대방에게 내 상황을 알렸다. 아이는 누구를 만나든 엄마와 할머니 집에 살고 있다는 말을 했고 아이가 그런 말을 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던 어른들은 “그렇구나. 할머니 집은 어때? 좋아?” 하면서 무심하고 덤덤하게 받아넘겼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나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 실컷 했나 보다. 아니면 어른들의 반응을 보니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가 보다 했는지도 모르겠다.


1학년 입학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담임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이가 주의력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등의 피드백이었다. 나는 “그런가요? 아이가 학교에서 잘할 수 있도록 집에서도 같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음 피드백 때는 “아이가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선생님 주변을 맴돌면서 자꾸 말을 시켜요. 선생님하고 친해졌다고 생각하나 봐요.”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담임 선생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그날 아이 한 명이 반으로 전학을 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어? 거기 우리 아빠 집 근처에 있는 학굔데?” 하더란다. 그러고 나서 엄마 아빠가 이혼했고 주말에는 아빠와 지낸다는 등의 이야기를 줄줄 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은 드디어 우리 아이에 대한 의문이 모두 풀렸다는 뉘앙스로 “**이가 자꾸 저한테 말을 거는 걸 보니 애정이 고픈가 봐요.” 했다. 나는 “이혼은 했지만 **이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돌보고 있는데 앞으로 더 신경 쓰겠습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우리 아이가 좀 산만한 데다가  원래 어른들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말은 안 했다. 그 통화 후에 내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우리 아들에게 부모의 이혼이 다른 사람에게 숨겨야 할 어두운 부분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웃음이었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는 자꾸 엄마의 나이를 물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묻고 또 물었다. 30, 40, 서른, 마흔 숫자들이 헷갈리기는 하는데 아무튼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 나이와 자기의 엄마 나이가 뭔가 다르다는 의문이 생겼나 보다. “엄마 몇 살이야?” “엄마는 네 나이에 40을 더하면 돼. 그러니까 너랑 끝자리가 같아. 외우기 쉽지?” 같은 문답을 며칠에 한 번씩 했다. 그러고 나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를 묻는다. 동네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우리 엄마는 마흔여덟인데 아줌마는 몇 살이에요?” 하거나 코로나로 학교를 못 가는 날이 길어지면서 온, 오프라인 체험 수업을 몇 번 했는데 그 선생님들에게도 다짜고짜 “우리 엄마는 마흔여덟인데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라고 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곤 했다. 졸지에 동네 사람들이 궁금하지도 않은 **이 엄마의 나이를 모두 알게 됐다. 나는 아이가 그럴 때마다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한참 그러고 나더니 이제는 됐는지 안 그런다. 그러다가 최근에 학교에서 한 아이와 입씨름을 하다가 또 엄마 나이를 오픈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우리 엄마는 마흔아홉 살이야!” 도대체 여기서 엄마 나이를 왜 말했어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상대방 아이의 말에 빵 터졌다. “말도 안 돼! 그건 뉴스에나 나올 일이야!!”


여러 사람에게 무언가를 수십 번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마음속에 생긴 이물감을 해소하는 우리 아이만의 방식이다. 아이가 그것을 충분히 게워 내서 뭔가 미심쩍은 듯했던 아이의 표정이 다시 말간 표정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은 **이 엄마로서 터득한 나만의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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