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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티브스피커 Feb 10. 2023

반갑다!!! <<더 타투이스트>>

WAVV 오리지널 <<더 타투이스트>>

어느 날 타투이스트들의 상황에 대해서 듣게 됐다. 있지만 없는 존재들이 여기에도 있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의 작품은 'K 타투', '파인 타투'라는 하나의 장르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에서 타투이스트들은 여전히 의료법 위반 '범죄자'로 언제든지 공권력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무고와 폭력에 항시 노출돼 있는 사람들이다. 브래드 피트 등 세계의 유명인들이 타투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김도윤' 타투이스트는 불법시술을 한 죄로 법정에서 500만 원 벌금을 선고받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인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이런 모욕을 감내해야 한다. 그들은 한국에서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들이다.


한국은 타투가 '불법'인 사실상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관련 법안은 계속 발의되고 있지만 의사들의 반대로 번번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타투이스트와 타투를 받은 사람들(눈썹 문신 등 포함)은 현실에 뚜렷하게 존재하지만 한국의 법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수십 년 동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버젓이 존재하는 사람들을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들로 방치하고 일상적인 부당함과 폭력에 노출시키는 국가. 그들에게는 국가가 가해자다.


그러던 중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그들의 바람막이가 되기를 자처했다.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타투이스트의 존재를, 그들의 문제를 다소 도발적으로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2021년 6월 16일, 국회 앞에서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타투 합법화' 기자회견을 하면서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등에 타투 스티커를 붙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이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류호정 의원의 말대로 국회의원들은 이런 일 하라고 거기 가 있는 거다. 투명인간으로 사는 사람들을 국회의원의 입과 몸을 빌어 현실에 드러나게 하는 거. 바로 그런 거.


사진=연합뉴스



최근에 우연히 웨이브에서 <더 타투이스트>를 보게 됐다. 한국의 대표 타투이스트 10여 명이 출연하고 이석훈과 모니카가 숍 매니저가 돼서 저마다 사연이 있는 신청자들에게 타투를 새겨 준다.  <더 타투이스트>는 1화 '상처', 2화 '선택', 3화 '기억', 4화 '액땜'의 네 편으로 구성 돼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타투는 해원 의식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동반자가 될 다짐을 몸에 새기는 일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취향과 스타일을 그저 드러내는 것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리 무거울 것 없는 선택이다.



1화 '상처' 편에서는 작업 중 손가락 한 마디가 절단된 엔지니어가 나머지 손마디에 손톱을 그려 넣었다. 아들의 손가락을 볼 때마다 가슴에 눈물이 맺혔을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연신 쓰다듬었고 진짜 손톱 같다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자의 뒷모습에 괜히 나도 울컥했다. 또 다른 신청자는 작업 중 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서 아이가 돼 버린 남편을 돌보는 중 유방암이 발병해서 등에 큰 수술자국이 생긴 여성이었다. 그는 고통의 자국에 아름다운 희망의 문양을 새겨 넣고 싶어 했고 타투이스트는 크고 아름다운 꽃을 새겨 넣어 주었다. 남편과 아이의 보호자이면서 자신도 병과 싸우고 있는 그는 튼튼한 갑옷을 입는 대신 연약한 상처를 드러내고 거기에 아름다운 꽃을 새겨 넣었다. 미소가 밝은 그는 등에 새긴 아름다운 꽃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타투 시술을 마치고 자신의 등에 새긴 꽃을 보게 된 그가 울음을 터뜨릴 때 내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네 편을 모두 보는 동안 아예 화장지를 앞에 갖다 놓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눈물 콧물 흘리면서 보게 될 줄 몰랐다.


2화 '선택' 편에서는 몸에 타투를 새겨 넣음으로써 조금은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서울대생, 남의 몸에 타투를 새기는 것이 업이면서도 자신은 전혀 타투를 하지 않는 타투이스트 등이 등장한다. 타투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저마다의 선택일 뿐이다.


3화 '기억' 편에서는 이제 26살이 된 세월호 생존자가 나온다. 그의 양쪽 팔에는 그간의 고통이 나이테처럼 그어져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물었다. "내 상처를 봤을 때 어땠어?" 친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흉하다는 생각은 안 했어. 슬픔을 이기는 너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어. 나도 내 방식이 있었으니까."  흉터만 있던 그의 팔에 꽃이 새겨졌다. 이제 그는 흉터와 꽃을 함께 품고 살아갈 것이다.


4화 '액땜' 편에서는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인이 나온다. 그는 운이 좋은 쪽이다. 엄마를 만났다. 엄마를 만나서 부둥켜안고 울었고 엄마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 친구에게 '액땜'의 의미를 듣고 마음에 들어서 새기기로 했단다. 앞으로 그의 인생에 이토록 큰 상실과 풍파가 더는 없기를 기도했다.


모니카와 이석훈은 신청자와 타투이스트와 시청자 사이의 성근 공간을 교감과 공감이라는 충전재로 따뜻하게 채워 주었다. 숍 마스터로서 자기 사연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신청자들과 타투가 낯설 수도 있는 시청자를 위해서 자기 몸에 새겨 놓은 것들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타투이스트들은 타투 문양을 구상하고 디자인하고 실제 몸에 새기는 과정에서 타투를 새길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몸에 새긴다는 의미와 무게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더 타투이스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 반가운 프로그램이었다. 먼저 이제는 장르가 된 코리안 스타일, '파인 타투'의 대표 타투이스트들의 작품과 시술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타투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는데 그들의 아름다운 타투를 나도 하나 가지고 싶다는 유혹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 프로그램이 '몸'을 보여주는 방식이었고 그로써 얻게 된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타투는 몸에 새기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시종일관 몸의 곳곳을 비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간 우리가 봐 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을 비췄다. 몸을 대상화하지 않고 마치 내가 내 몸을 보는 것과 같이 몸을 보여줬다. 그것은 낯설지만 또한 익숙하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선이었다. 내 몸인데 가슴인들 어떻고 허벅지면 어떠랴. 내 몸에, 내 상처에 내 다짐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는 건데 어딘들 무엇인들 어떠랴. 그게 가장 반가웠다.




사진 = 네이트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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