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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티브스피커 May 24. 2023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고도 멀쩡한 어른이 될수있구나."

우리는 얼마 전 세상을 뜬 선배를 묻은 나무에 이르는 긴 길을 같이 걷고 있었다. 언제 봐도 대학 시절 그 얼굴인 친구지만 그간 빈 시간들을 따라잡으려 띄엄띄엄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의 아들들의 안부를 물으니  둘째 아들에 대한 걱정이 돌아온다. 친구의 고등학생 둘째 아들이 방에서 거의 나올 뿐만 아니라 대학도 안 가겠다고 하고 무엇보다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아들이 이러다가 '은둔형 외톨이'가 될까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친구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교육관마저도 흔들고 있는 불안과 걱정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설명을 들어 보니 친구의 아들은 방 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친구의 아들은 웹툰 작가를 꿈꾸면서 갈고닦은 그림 실력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서 SNS를 이용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내 주고 있다고 한다. 그것으로 적으나마 용돈도 벌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 만나지는 않으나 친구도 몇 명 있다고 한다. 학교를 옮기면서 출석 문제도 해결됐다. 친구 아들의 진로에 대학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걸 빼고 본다면 친구의 아들은 혼자 있기 좋아할 뿐 자기 주관 뚜렷하고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친구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하루 종일 잠을 잔 기억밖에 없다. 한잠 자고 나서 깬 것처럼 기억이 거의 없는데 한 가지 확실한 기억은 학교가 너무 싫었다는 것이다. 학교 안의 모든 것이 부조리하게 느껴졌고 말이 통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마치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 같았다.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자퇴서를 던지는 상상으로 그 시간을 버티면서 매일 꾸역꾸역 등교를 했다. 학교야말로 진정한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탈출이 불가능한. 지금 같으면 학교 밖 대안을 찾았겠지만 그때는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지 못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면서 집에서는 잠만 자고 학교에서는 유령처럼 지냈다. 고3 때 우리 반에서 수업 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자율학습을 하지 않겠다는 나에게 부모님의 확인 서명을 받아 오라고 했는데 부모님은 두말없이 사인해 주셨다. 나는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 와서 이불을 펴고 아침까지 자곤 했다. 자고 자고 자고 또 잤다. 집 밖으로 나간 적은 더더욱 없다. 하교 후 다음날 아침까지 신발을 신은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왜 그렇게 잤을까? 시간을 뭉텅뭉텅 지워서 그 시간을 빨리 통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건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집에 들어와서 대낮부터 불 끄고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딸을 몇 년씩 지켜보고 있었던 내 부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의 행동이 이해 안 되고 버거울 때 나는 내 부모를 떠올린다. 관심과 사랑을 거두지 않은 채 끝까지 기다려 준 내 부모를 생각한다.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학창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방에서 온갖 상상을 하거나 잠으로 보냈으며 거의 성인이 돼서야 친구를 사귀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집 밖으로 나오기 위해 신발을 신었다. 그후 나름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다. 이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내 삶의 속도다. 그래서 아직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가 없는 내 아이를 보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내가 조바심을 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 고유의 속도로 잘 커 가고 있다. 내 아이도 언젠가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과 만날 것이다.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고도 너처럼 멀쩡한 어른이 될 수 있구나!


내 말을 듣고 안심이 된 듯 친구가 뱉은 말이다. 멀쩡한?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ㅎㅎ 맞다. 나는 멀쩡하고 멀쩡하게 살고 있다. 친구의 아들도 언젠가는 방밖으로 나올 거라 믿는다. 믿어 주고 지켜 보는 엄마가 있으니까 더욱. 내가 내 아이에 대해서 걱정할 때 내아이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아이를 먼저 키운 선배가 말했다. '내 아들 잘 컸어. 원래 잘 클 아이였는데 나만 혼자 걱정한 거지. 네 아들도 잘 클 거야." 나도 학교를 힘들어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려는 아이들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모들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학교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학교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선택지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뭉텅뭉텅 써 버린 그 시간이 정말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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