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미지의 나이로...
새로운 나이를 경험하는 즐거움
살아 있는 한 누구나 나이들어 간다. 매일매일 미지의 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을 지나니 나이 드는 것에 점차 가속이 붙는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 깜박하는 사이 호호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나이 드는 것이 싫지 않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예전에 이미 내 나이였던 사람들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느꼈을 공기와 기분을 들이마셔 본다. 산을 따라 나 있는 계단을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들리는 소리가 다르다. 날씨가 다르고 발에 닿는 감촉이 다르다. 새롭게 오른 계단 위 풍경이 낯설다가 편해지고 익숙해질 무렵 다음 계단이 나온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계단을 또 올라 본다. 이렇게 끊임없이 시간 속을 여행한다.
엄마는 오십견 때문에 한참 고생을 했다. 여기저기 여러 병원에 다녔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그것도 지나갔다. 나이 이름이 붙은 병이라니... 그런데 실제로 그 나이에 왔다가 지나가더라.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어 정형외과, 통증의학과를 전전하면서 그 시절의 엄마를 대면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었을 때 나는 참 못됐다. 아이를 업고 안고 반쯤 멍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여자들의 심정을 알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개싸움 하듯 그악스럽게 서로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은 저럴 만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 싶었다. 나이 든 여자들의 뽀글이 파마와 옷과 음악적 취향을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어느 계단에 이르러 나는 아이를 업고 있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살필 여유가 없었고 또 다른 계단에 이르러서는 창피한 줄 모르고 길거리에서 그악스럽게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으며 지금은 뽀글이 파마의 편안함을 추앙한다.
나는 앞선 사람들의 발자취로 다져진 흙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또 한편 그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에 살고 있다. 그들이 다져 놓은 길을 가고 있지만 그들과 같은 시간이 아니니 내가 보는 풍경이 감정이 느낌이 그들의 것과 같을 리 없다. 그것이 흥미롭다.
나는 아이였고 청년이었고 중년이며 언젠가 노년의 시간도 살아 보고 싶다.
사람들은 젊음을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늙어 갈 기회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조차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그 삶이 무척 고됐을 수도 있고 죽지 못해 버텨 온 시간이었을 수도 있으니 늙을 수 있다는 것이 늙어 간다는 것이 무조건 축복이라고 단정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늙어 가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아빠, 사촌 오빠, 선배 언니...
일터에서 죽어 가는 젊디 젊은 사람들도 생각해 본다.
어른이 돼 보지 못한 아이들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살아 있고, 오늘도 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두려움 없이 미지의 나이로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