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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티브스피커 Jan 07. 2024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

요즘도 지하철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의 몸 어딘가에서는 노란 리본이 달랑거린다. 그렇게 군중 안에 노란 리본이 반짝 빛나면 반가움과 안도감이 든다. 우리는 서로 전혀 모르고 공통점도 별로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기억에 대해서는 같은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란 리본은 작은 '알림'이다. 자신이 아이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임산부 마크처럼 자신이 적극적으로 어떤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알림'이며, 잊지 않겠다는 그때 그 순간의 다짐을 사람들이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알람'이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이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스스로 그 기억을 환기시키는 형광 안내판이 되는 것을 자처하기도 한다. 최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지만 밝게 빛나는 두 개의 노란 알람을 봤다.


최근 방송 중인 jtbc의 '싱어게인 3'에 키 크고 해맑은 미소의 고3 학생이 출연했는데 나이답지 않은 짙고 깊은 느낌의 목소리와 가창에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그 나이 어린 출연자의 기타에서 줄곧 작은 노란 리본이 달랑거린다. 17살의 마냥 해맑은 웃음과 그의 분신 같은 기타 끝에서 달랑거리는 샛노란 리본에 매번 괜히 울컥했다.


https://youtu.be/BqgM-MuBmxo

jtbc voyage


또 다른 알람은 더 뜻밖의 곳에서 보게 됐다. 최근 끝난 Mnet '스트리트 걸스 파이터(스걸파) 2'에서는 다국적 팀인 '잼리퍼블릭 주니어' 팀이 우승했다. 이 팀은 뛰어난 개인 기량과 개성있는 안무로 승승장구했지만 경연 과정에서 두 명의 멤버가 중도에 포기하고 파이널 경연을 앞두고 팀 에이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따뜻한 리더십으로 나이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팀원들을 끝까지 잘 아우른 한국인 리더 '박은우'가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게다가 경연의 룰 때문에 팀이 아닌 개인으로 경연을 이어가게 됐지만  '박은우'의 원 소속 팀이었던 '노립'은 '스걸파' 첫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기억에 남는 팀이다. 나는 '스걸파' 종영 후 아쉬운 마음에 '박은우'와 그의 원래 팀 '노립'의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정말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고 또 울컥했다.


https://youtu.be/gOMZEQRHVqA

댄스팀의 훌륭한 퍼포먼스에 완전히 몰입해 있다가 마지막에 펼쳐진 펼침막에서 빛나는 노란 리본과 영원히 기억해 달라는 호소를 보고 잠깐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곳에서 기억하려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 소년과 소녀들은 그 배가 가라앉을 때 몇 살이었을까 짚어본다. 그 기억이 이들의 길지 않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왜 이토록 기억하고자 하는 걸까? 나와 완전히 같은 마음은 아닐 거 같은데 그건 어떤 마음일까? 여전히 곳곳에서 노란 알람이 울려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알람을 자처하는 소년과 소녀들에게 미안하다.


가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어떤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본다. '스우파 1'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다. '라치카'의 리더 '가비'는 '세미파이널'의 미션 '맨 오브 우먼'에서 세상의 모든 별종들, 모든 소수자들을 응원하는 퍼포먼스를 해서 감동을 줬다. 그때 '가비'는 '스우파' 경연에서 '세미 파이널'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발악을 했던 건 바로 이 무대를 하기 위해서였으며 누군가에게는 분명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영상에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았으며 감동했다는 댓글을 달았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려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는 어떤 간절함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



https://youtu.be/wtL4wrs6YDQ

Mnet TV, '라치카'



작년 10월 29일에 참사 이후 처음으로 이태원에 가 보았다. 축제가 있던 자리에서는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시청 앞까지 걸어갔다. 어스름이 어둠으로 변하고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추모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무대에서는 마지막 순서로 희생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을 보여 주며 이름을 불러 줬다. 현실의 삶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지만 그들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걸 기억해 달라는 외침처럼 들렸다. 추모식장 옆 현화하는 장소에 보라색 리본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가방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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