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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Mar 14. 2022

35화) 아름다운 옥상 낙원, 선물할 것이 생겨나다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 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5째 주 (5.16~22)



아름다운 옥상 낙원


인간의 시간과 식물의 시간은 다르다. 


이 글은 밀려있는 글인데, '한 달간의 시간'이란 것이 식물들에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 돌아보며 느끼고 있다. 기록을 하고자 사진들을 쭉~ 되돌아보고 깜짝깜짝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지금은 이미 생애를 거의 마친 시점이 되어있는 아이들이 1달 전 사진 안에서는 이제 막 태어나고 있다! 겨우 1달 안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현재(과거) 시점으로 돌아와서.


지금의 밭! 나의 아름다운 옥상 낙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문을 촤~ 열어젖히고 짜잔! 등장하는 이 순간. 이때가 가장 좋다.


https://youtu.be/6lXGqQ3tyEw

뒷산에서 새로운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새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환경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때 아주 조용한 밤이 되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까지 들린다.


모든 게 하나씩 어설프지만 (도로 때문에 절단난 반쪽짜리 뒤 산, 불법 계곡 영업으로 지저분하고 접근도 안 되는 시냇물,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허물어져 버릴 재개발 단지..) 산과 물,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옥상(땅)이 있는 지금의 환경은 가히 '명당'이 아닐까! 생각된다.


땅을 찾을 때 이런 곳을 찾아야겠다. 꼭 뒤에 산과 가까운 시냇물이 있는!

우왕. 안테나처럼 가냘픈 토종 뿔 시금치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예쁜 치커리.

토종 게걸무의 이 빛나고 튼실한 떡잎!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토종 육지면 목화 5형제도 나비처럼 잘 자라는 중. 새에게 뽑혀서 타격 입었던 막내도 조금씩 회복 중.

꼬맹이 양상추들. 땅이 너무 좁아서인지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다.

토종 상추! 이제 잎들이 커가면서 고유의 생김새와 색깔이 드러나고 있다. 아주 야들야들하고 얇다. 처음엔 연둣빛이 많았는데 점차 붉은색이 많은 잎들이 나오고 있다.


토종 씨앗들은 아직 완전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예 모르기 때문에,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잘 자라라!

푸릇푸릇. 힘차고 귀엽게 커가는 청경채. 요놈들도 곧 밭을 뻥튀기해 줄 때가 다가오고 있다.

토종 조선파. 실처럼 나오더니 어느새 파 모양이 갖춰지기 시작!

쑥쑥 잘 자라는 강낭콩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잎과 성장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힝. 귀여운 완두콩이. 


끝에 이렇게 삼 발의 덩굴줄기 손을 뻗어 부지런히 감아 지탱할 다른 식물들을 찾고 있다. 옥상 낙원의 첫 덩굴 식물이다. 꼽아준 나뭇가지에 살짝 얹어놓아 본다.

오매. 이것은 끈질긴 생명력. 감자 옆에 '돼지감자'가 조용히 자라고 있다. 


퍼 온 흙에서 딸려온 것인데, 나오는 대로 다시 산에 되돌려주어 심어주었었는데 용케 하나가 살아남았나 보다. 감자와 공존하기엔 땅이 부족하여 힘들겠지만, 잠시 그냥 두어보기로 한다.

참으로 오랫동안 깜깜무소식이었던 허브 존에서도 이제야 겨우 씨앗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꼭 동시에 고개를 드는 것을 보니 정해진 때가 있는 것 같다. 온도 건 시간이건.. '결국은 때가 되면 깨어나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면 된다'는 깨달음을 준 로즈마리.


https://youtu.be/9G74vTPEMH4

신나게 먹고 있는 애벌레의 먹방! 짙은 녹색의 귀여운 똥을 한 바가지 싸 놓았다.


요 통통이들은 이후로 보지 못했다. 이 정도 커버리면 신기하게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다. 새들이 가져갔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귀여운 통통이들. 흑흑.





매일 풍성하게 나를 먹여 살리는 효자들 : 수확과 선물

이제 매일매일. 옥상 낙원의 그 작디작았던 씨앗들은 나에게 풍성한 선물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게걸 무의 잎은 아주 크고 달다. 일반 무의 잎과 크기도, 맛도 다르다. 월등히 좋다!

누구는 '호미' 하나로 농사를 짓는다고 하던데, 난 '가위' 하나로 농사를 짓는다! 


매일 난 미용사가 된다. 부지런히 이 손님, 저 손님 무성히 자라나는 머리들을 다듬어주어야 한다. 정작 나는 미용실 못 간지가 오래라 거의 산신령 헤어스타일이 되어가고 있는데, 요놈들 머리 커트해 주기에 바쁘다. 


가위 농사의 핵심은 '끝의 잎들을 부지런히 잘라내어 손실 없이 최대한 이용하는 것 = 줄기나 뿌리를 자르지 않고 어차피 떨구려 준비하는 오래된 잎들을 부지런히 잘라 내가 먹어 활용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모두 애기 잎들이지만, 자금으로서는 가장 큰 잎이다! 적겨자들도 (꼬맹이였는데) 어느새 잎을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기다리고 뭐하고 할 틈이 없이 부지런히 따야 한다. 


난 냉장고 따위가 없다. 한 번에 다 컸을 때 왕창 따서 보관하는 그런 시스템은 불가하며,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바로바로 그날그날, 아니 매끼마다 '딱! 먹을 만큼만!' 딴다.

먹을 만큼만! 하하핫.


엄청나게 많다. 잎이 포화상태로 너무 많이 나버려 어쩔 수 없이 내 끼니의 양을 초과해버리는 시기가 왔다.

무잎도 한 바가지!

우왕. 귀여운 치커리들도 부지런히 머리 커트커트.

왼쪽부터 시계방향 : 게걸무, 치커리, 청경채, 일반 무, 당근, 적겨자


미용사 원장님의 숱 치기.

비타민과 무가 압도적으로 양이 많아 매일같이 연속 무 잎만 먹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하루 만에도 삼발이 되는 무잎 손님.


그래서 이제 '선물'이란 것을 할 수 있는 양이되었다. '선물'이라 쓰고 '처리'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시간의 한정성'을 갖고 있는 살아있는 존재를 함께 나눠먹고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무잎과 비타민, 적겨자들을 따서 나누어 담고 이리저리 만나는 지인에게 선물했다! 다들 좋아해 주셨다. 직접 씨앗부터 키운 요놈들이 잎을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만으로 먹는 내내 감동을 받고, 맛을 잘 느끼며 먹을 수 있었다는 후기에 무척 기뻤다. 


수확 날짜를 쓸 때가 가장 즐거웠다. '바로 오늘 수확한 잎'은 직접 기르지 않는 이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것이니까!


이렇게 식물 왕초보 농부, 미용실 원장님은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들을 해나가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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