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차 프로 코노러의 음악취향
나는 프로 코노러다. (코노: 코인노래방) 좁은 공간에 두-세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코인노래방. 유독 나는 혼자서도 잘논다. 심심하면 코인노래방에 간다. 학창시절부터 벌써 9년차다. 한 2~3천원으로 스트레스를 확 풀수 있다.
내가 노래방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에 따라서, 내가 듣는 음악 취향도 달라져왔다. 그런데 한 5년 전부터, 나는 내 플레이리스트의 대부분을 최신 아이돌 노래로 채운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대 덕질의 시대, 아이돌 음악은 어디서나 사랑 받는다. 다만 나는 덕력이 높지는 않다. 그냥 범아이돌애(愛)로 무장되어 있어 다양한 그룹의 노래를 듣는다.
내 음악 취향이 막 유니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평범하지는 않다고 느낀 때는 훈련소에서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좀 깨지고, 슬슬 서로 이야기가 나오자 음악 주제가 빠질 수 없었다. 근데 거기선 대부분 <남자는 발라드>를 외치며 1990~2000년대 발라드와 락발라드가 취향이라고 헀다. 노래방에서든 플레이리스트든 발라드를 외친다는 것.
물론 내가 발라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노래방에서 열정적으로 불렀던 것은 버즈, SG워너비, 김범수, 임창정 등의 발라드 곡이었다. 게다가 듣기도 많이 들었다. 그때는 고음을 지르는 것=노래를 잘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있었다. 그 시기엔 오히려 아이돌 노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변해버렸다. 이제는 아이돌 노래를 거의 80퍼센트 이상 꽉꽉 채운다. 내 취향에는 이유가 있다.
일단 아이돌 노래는 눈과 귀가 즐겁다. 난공불락의 성조차도 이들을 데려다 놓으면 함락시킬 것 같은 트와이스부터, 레드벨벳, 워너원, 방탄소년단....다들 한 미모하고 노래에도 꿀이 발렸다. 아이돌 노래 못한다는 소리는 편견은 옛말이다. 요즘 살벌한 트레이닝을 거쳐 선발된 이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아티스트의 감성이 담긴 독특한 뮤비에, 트렌디한 사운드까지 고루 갖췄다.
들을 때건 부를 때건 에너지가 넘친다. 어쨌든 아이돌 노래는 시장을 겨냥한 곡이 많아서, 감성적인 곡이라도 리드미컬하다. 신나는 곡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도서관에서도 신나는 곡이 재생되면 내적 댄스를 추곤한다. 노래방에서는 빵빵한 사운드와 함께 노래와 혼연일체가 된다. 그럴 때면 평소에는 피곤에 찌들어서 에너지를 꼭꼭 감추던 내 몸이, 사방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곡 자체가 세련됐다. 유니섹스의 시대, 옷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입는데 노래라고 해서 어찌 남녀칠세부동석을 지킬 수 있으랴. 남자 곡이든 여자 곡이든 트렌디하다. 게다가 이렇게 좋은 곡들을 노래방에서 부르는 데 망설일 필요도 없다. 친절히 남자키 여자키를 지원해줘서 남녀 노래를 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다. 물론 원키로 부르면 더 신난다. 못부르든 말든 눈치볼 필요없이 혼자가면 더더욱 좋다.
10대와 20대의 감성을 자극한다. 나도 20대지만 이들은 어찌 그리 20대의 감정과 마음을 자극하는 노래와 영상을 만들었을까? 사랑, 꿈, 진로 등의 비교적 제너럴한 요소부터 탕진잼으로 대비되는 욜로 라이프까지 커버하는 센스가 기가막힌다. 젊은 층의 유행어를 차용해서 제목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곡에 대한 거부도 적을 뿐더러 흥을 폭발시킨다. 노래를 듣는 것 만으로도 젊은 감성이 가슴속에 부풀어오른다. 야외 클럽에서 맥주한잔 들이키는 마냥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살아간다는 건 고구마처럼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별 생각없이 음악을 틀어놓거나 막 소리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자칭 프로 코노러로서, 9년간 코인노래방을 다녔지만 최신 아이돌 노래만한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신 아이돌 노래의 트렌디함과 세련됨은 마치 신선한 사이다같달까. 음악이 약이라고 한다면 아이돌 노래는 최신판 특효약이다. 이런 약 빨면서 사는 것, 정말 더할나위 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