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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ul 20. 2021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 작가의 왕복 서간 에세이

무한대만큼 멀거나 제로만큼 가까운 우리 사이를 웃으며 거닐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과의 여행 정말이지 피곤하고 즐거웠습니다. 여전히 선생님을 생각하면 울렁거립니다. 처음보다 더한 울렁거림입니다. 저도 모르게 생긴 애잔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잘나가는 의사 양반을 어느새 애잔해하게 되다니 시간이란 참으로 이상합니다. 함께 책을 쓰며 보내는 시간은 특히 곤란하고 짠합니다. p264, 생각하면 울렁거리는 남궁인 선생님께



왜 이슬아 작가는 남궁인 작가를 애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문학동네에서는 친절하게도 2020년 6월부터 서점 서가에서 꽤나 핫한 두 명의 작가를 엮어 연재를 시작했다. (이웃님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알게 되었지만, 정작 시간내어 읽진 못했던 그 이야기들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웹진보다 책이 더 가까운 사람.)


서점 서가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 작가.

마치 사춘기 시절 주고 받았던 교환일기 격의 서간문은 좀처럼 진실함을 담는다. 

뭐든지 캐릭터 설정이 중요한 요즘인데, 이번 연재의 캐릭터는 멋짐을 글에 담으려는 남궁인 작가를 꾸짖는 냉혹한 글 선배 같은 이슬아 작가가 활약한다. 두 분의 부캐 모두 성공적입니다.


비슷한 세월을 살아온 남녀작가의 서신은 어쩐지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메이지 시대의 대표작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강연에서 사랑합니다 (I love you)를 번역하면서 “달이 아름답네요.” 정도로 표현하면 된다고 한 것이 떠올랐는데,

어쩌면 이 두 작가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어떤 (작가라는 공동체에서 솟아나는) 애정을 서신 속 거친, 혹은 무심한 문장 속에 숨겨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유쾌하기도 하고, 엄하기도 하고, 때로는 애잔하기도 하고, 때로는 극사실주의에 숙연해지기도 하는 서신들에 작가라는 부캐 너머의 삶을 그려본다. 그들이 겪는 실존적 고민과 현실의 문제들이 당신도 나도 너무나 똑같아서 내 앞에 놓인 삶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저는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죽고 싶은 욕망까지 느낍니다. “부족한 자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라고 일기장에 쓴 날도 있었습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우면 습관처럼 관자놀이를 뻥 뚫어버리는 상상을 합니다. 살기 위해 강박적인 성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은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순환하는 욕망을 떨쳐버릴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의궁인은 소멸하는 타인의 생명을 보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p125, 126, ‘라떼’를 엎어버리는 불호령의 왕 이슬아 작가님께


편지를 쓰는 기쁨중 하나는, 어쩌면 편지에 대한 답장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아닐까? 굳이 이메일을 써도 되는데, 손편지를 써 국제우편을 부치던 날들이 있었다. 그 행동에는 내가 쓴 편지만큼 정성스런 수신자의 답장을 기다리는 행위 또한 포함되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편지를 기다리고, 읽고선 따박따박 따지고, 그러다 사과하고, 하나의 글 안에서 여러 인격을 들키고, 놀리고, 조롱하고, 걱정하고, 선물하고, 소중한 이야기 중 하나를 꺼내놓고, 그에 따르는 슬픔도 덧붙이고, 금세 농담을 하고, 편지를 보내고, 또다시 답장을 기다립니다. 선생님이 살아 있어서요.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얼굴도 상상합니다. 한강에 13분간 잠겨 있었다가 생으로 돌아온 사람의 알 수 없는 표정 같은 것을요. 그의 13초와 13분과 13년을 헤아리다가 아득해집니다. 그 앞에 10초간 서 있다가 집으로 가는 선생님을 상상해도 아득해져요. 선생님은 저보다 9년 먼저 태어났는데 가끔은 90년 넘게 산 것처럼 지쳐있습니다. p112, 113, 간혹 스텝이 꼬이는 남궁인 선생님께


임경선과 요조, 두 작가의 교환일기부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2019) 최근 브런치 대상 수상작이었던 김이슬과 하현, MZ세대의 두 작가의 편지 (우리 세계의 모든 말, 2021)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연재되고 있는 서간에세이들. 서간문이 유행처럼 인다. 이번 시리즈가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획을 긋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벌써 4쇄를 찍고 있다는 소식...(역시가 역시죠?) 편안히 읽혀서 좋다. 서간문답게 친근하고, 가깝고, 두 작가의 거리가 좁아지는데 괜히 내가 그 사이에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엔 종국적으로 오해가 사라진다. (아니다)





작년 6월에 쓰신 첫 번째 편지에서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문득 남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이라고사실 저는 쭉 반대로 생각해왔답니다서간문의 본질은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이 문득 남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라고양쪽 다 진실일 것입니다서간문의 본질은 다양할 테니까요. p205, 남궁인밖에 모르는 남궁인 선생님께


친구들에게 종종 편지를 쓴다. 실수할까봐 연습장에 먼저 써보고 (서간문에도 퇴고가 필수다) 완성된 편지를 편지지에 옮겨 적는다. 내가 보기 위해 일기를 쓰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편지를 쓴다. 오직 상대방을 향한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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