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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Oct 12. 2020

삼시 세 끼의 고단함과 기쁨

삼시 세 끼.

누군가 이 단어를 듣는다면 종편방송의 유쾌하고 따뜻한 예능프로그램을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고단한 노동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뭐 먹을까 메뉴 고민부터, 필요한 식재료 장 봐오기, 손질하여 다듬어 장만하기, 그리고 레시피에 따라서 썰고 끓이고 볶고 플래팅 하는 것까지 꽤나 창의적이고도 부지런해야 하는 과정을 요한다.


전 과정을 혼자 총괄하는 한 끼의 식사 준비하기가 꽤나 즐거운 과정이기도 했지만, 코로나 19가 바꾼 일상에선 돌아서면 밥, 일명 돌밥이라는 신조어로 떠오른 집밥 한 끼가 어느새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었다.


장보기 빈도도 1주일에 2회에서, 이제는 이틀에 한 번꼴로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놓고 또 끼니마다 다듬어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온몸으로 느끼며 비어 가는 냉장고를 바라보며 다가올 아침을 준비해야 함을 생각하면 내일이 무서워지기도 했다.


많은 분들의 노력과 실천으로 일상생활의 정상화를 1주일에 한 번씩은 맞보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고, 그와 함께 집에서 부대끼던 아이들도 주중 하루 이틀은 학교에서, 남편은 회사로 가는 일상을 누리게 되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고춧가루와 냉동실에 비축해둔 마늘다짐 류의 소진이 더디다. 그만큼 음식을 할 때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먹기에 거스름이 없는 무난한 음식을 만들어왔다는 뜻이다.


매번 식사 준비를 마치고 엉망이 된 주방을 대충이라도 정리해두고, 꺼내놓은 식재료들을 다시 냉장고 제자리에 넣은 후 식탁에 앉으면 예쁘게 떠놓았던 메인 반찬들도 이미 아이들 손에 처음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잘 차려진 밥상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다.


그래서 혼자 있는 주중의 하루는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본다.

내가 좋아하는 새우를 다져 넣은 김치전을 구워 접시에 예쁘게 담아낸다. 해감 잘 된 바지락 국에는 땡초를 듬뿍 넣어 해장국처럼 끓여내 보기도 하고, 가족들이 별로 즐기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갈색으로 잘 익은 무화과를 4등분해 샐러드위에 얹어내고, 장보며 살짝 담았던 막창 키트에 집에 있는 양파, 버섯, 당근을 듬뿍 썰어 넣고 불맛 나게 볶아낸다.


압력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곡밥을 밥공기에 담고 상차림을 끝낸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즐기는 식사란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삼시 세 끼의 고단함이 기쁨이 되는 날이 있다. 주중의 하루는 나만을 위한 심야식당 같은 우리 집 1인 식당이 열린다.


나를 위한 요리사를 고용하고 오롯이 나를 위한 메뉴를 준비한다.


그런 날이 있다.


남은 6일을 꽤 괜찮게 지나가게 하는 나만을 위한 시간. 나만의 일상 속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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