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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Oct 25. 2020

5000-30 방 세 칸인 집을 찾는 사람들

남편의 이직과 함께 도보 출근이 가능한 동네로 이사하며 들어가게 된 집이다.


신혼을 시작하며 수중에는 4500만원 정도의 목돈이 있었고, 첫 집은 방 2칸, 작은 거실이 딸린 2층 독채였으니 거기서 좀 더 나아가 방 3칸에 대한 열망으로 얻은 집이다. 물론 1층 입구 옆 필로티로 마련된 주차공간이 선택에 가장 큰 이유였다. 처음 살던 주택가에는 매일 저녁 주차 전쟁인지라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저 우리 눈엔 완벽해 보이는 보증금 6천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집을 빠듯한 재정상황을 간곡히 털어놓고, 보증금을 천만원 낮추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30으로 계약.


서향집의 단점을 온몸으로 느끼며 계약 기간 2년이 지났고, 이사 계획을 세워 집을 찾아다녔지만 마뜩잖은 결론을 못 내리며 이 집의 계약은 자동갱신이 되었다. 크면서 좋아질 거라는 둘째 아이의 알레르기가 심해져가며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즈음 아토피 아이들에게 좋다는 산속의 아파트를  물색하며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주인은 계약도 갱신되었고, 살고 있는 우리가 집을 내고 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부동산 경험이라고는 1도 없는 내가 발품을 팔아 집을 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21세기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집을 낸 것이다.


방 3칸, 두꺼운 고딕체로 선명하게 인쇄가 된 전단을 A4지 1/4 크기 사이즈로 만들어 동네 여기저기 붙였다.


요새도 저런 전단보고 연락을 할까 반신반의하는 중, 신기하게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들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다 부동산에서 온 연락이었다는 게 의외였다.


방을 보러 오겠다고, 집을 구하는 세입자를 데리고 가겠다고 연락이 와서 그러고마 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제 5000만원정도의 돈을 쥐고 꽤 괜찮은 집을 찾으려는 세입자들이 되는데.


아기띠를 했음에도 전체적으로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이 꾸미고 온 아기 엄마는

<벽지는 바꿔주는 거죠?>

<주인이 벽지는 안 해준다고 했는데요>

<아니 이 정도면 벽지는 바꿔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같이 온 부동산 이모는

<이거 계약하면 집주인분도 복비 내야 하는 거 알죠?>라길래

<들어오는 세입자만 내는 거 아닌가요? 저희는 부동산에 의뢰한 적도 없는데요> 하니 어이없는 표정을 띄우고는 사라졌다.


또 다른 부동산 실장이란 사람과 온 부부, 차림새도, 헤어도, 스타일도 댄디하고 세련되었다.

<구조도 괜찮고, 집 내부도 깨끗하네요, 방도 3개고> 하는 목소리에 듣고 있던 내가 깜짝 놀랐다. 외양에서 풍기는 40대 분위기는 저리 가라인 60대를 훌쩍 넘긴듯한 어르신의 쉰 목소리. 부부인 듯, 애인인 듯 애매해 보이는 접점에 서있는 방문자들.

오후에 다시 집을 보러 왔을 때, 이미 다른 분과 계약하기로 했다는 내 말에 노발대발 본 성품을 드러내시던, 연락 온다고 아무에게나 집을 보여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 무지막지한 노인들의 역정을 맞게 되었다.

<아니, 집 계약했다고? 우리가 오전에 보고 갔는데 계약을 했다고? 그럼 집은 왜 보여줬습니까!>

<그 사이에도 몇 팀이나 집을 보러 왔고, 어제도, 그제도 왔었기에 누가 계약한다고 해도 그게 이상한 일인가요?>하며 올라오는 반문은 꾹꾹 속에 누르며, 아기띠를 맨 채 황망히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집을 3번 보러 온 인근 원단공장의 사모님, 그분이 제일 아쉬운 분이면서도 고약한 분이셨다. 

<집이 공장이랑 위치도 가깝고, 조용하고, 독립되어 있고 좋긴 한데... 지금 집은 밑에 국밥집이라 음식하면 냄새랑 증기랑 올라오니 너무 불편해> 하면서 굳이 시간 내어 우리집을 3번을 보러 왔기에 그래도 계약을 하려고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결국에는 불발된, 제대로 간만 본 사모님. 이외에도 1주일 이란 기간 동안 우리 집을 방문했던 다수의 예비세입자들.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5000-30집의 민낯을 보았다고 할까.

과연 이 집을 내고 나갈 수 있을까?


몇 번의 방문자를 받은 끝에 사람들이 5000-30에 기대하는 집이란, 방이 세 개여야 하고, 큰방에는 12자짜리 장이 들어갈만한 사이즈가 돼야 하고(나중에는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면 12자짜리 장은 안 들어갑니다 라고 먼저 실토했다), 다세대주택이지만 방범장치가 갖춰져 안전이 확보되어야 하고, 현재 공용계단에 윗집이 너무 짐을 많이 적재했으니 그것도 조정해서 공간을 썼으면 좋겠고 등등 집에 대한 개인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희망사항들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그 집은 5000-30이 가능한 집일까?

이 모든 욕망을 구현하기에는 불가능한, 그저 평범한 2세대가 살고 있는 26평 빌라(다세대주택)였기에 나는 결국 이 모든 사람들에게 집을 내지 못했다.


6월 30일 이삿날을 잡았다. (2주 뒤)


우리 다음으로 살게 된 세입자는 지역맘 카페를 통해 우리 집을 알게 되었고(부동산에 시달리고 온라인 부동산 서비스 사이트에도 시달리고, 마지막으로 지역맘 카페 <부동산, 구인> 란에 올렸던 것이 1450 조회수를 찍고), 한 번의 방문, 이후 퇴근한 남편과 한 번 더 방문하며 집을 계약하겠다고 했다. 기타 요구사항은 없었고, 이삿날 정도만 조율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이사 나오던 날, 작은 방 짐을 빼보니 책장 뒤 전면이 곰팡이가 올라와있었다. 도배는 안해준다던 주인도 옥상 수도 쪽의 누수가 있는 것 같다며 옥상 방수와 도배를 새로 하겠다했고, 짐이 다 나간 집을 살펴보며 사는 동안 깨끗하게 써줘서 고맙다 했다. 곰팡이 핀 작은방과 큰 방 부분 도배는 하고 세입자를 들여야겠네 하는 말을 들으니 떠나는 내 맘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 도시의 주산인 금정산 밑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며 아이의 알레르기는 다소 진정세로 접어들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이 무섭고, 해가 바뀌면 돌아오는 봄철의 미세먼지도 두렵지만 그래도 좀 더 나은, 아이 체질에 적절히 맞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우리가 살았던 '집'에 대해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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