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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Dec 16. 2020

갈색병을 선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친구 혹은 아는 엄마 그 중간에서.

갈색병, 공항 면세점에 가면 명품 브랜드 화장품 사이에서 단독 쇼케이스에 들어가 영롱한 자태를 뽐내던 갈색병을 본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서 멀어진 지금, 생일이라고 해봐야 쇼핑몰의 생일 쿠폰, 복지로 알리미에서 <생일을 축하합니다> 메일 정도 받는 이벤트가 전부인 그런 날.


택배가 도착했고, 웬걸 생일선물이다.

발신인은 B.


B는 말할 것 같으면 아는 엄마, 아니다 친구라고 해야 하나?

생일은 카카오톡에 뜨니까 알 것이고, 그래도 이 정도까지 보낼 필요가 있나?

에스티*더의 갈색병, 미니어처가 아니라 본품을 보낸 B의 마음은 무엇일까?


검색창에 제품명을 입력하고 가격을 알아볼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받았다는 인증샷을 찍어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될까요?!>

<그럼요, 받으셔도 됩니다>라는 답이 왔다.

다음 날 감사의 인사라도 전할 겸 전화를 걸었다. B는 나에게 부담갖지 말라며, 본인이 새해에 선물로 받았었는데 쓰는 내내 기분 좋았던 아이템이라 나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생일 선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마지막으로 (동창)친구에게 보냈던 선물은 키엘의 수분크림, 디올의 립스틱 정도였다.


B의 생일은 내 생일로부터 정확히 2달 뒤였다. 무엇을 보내야 하나.



우리는 모종의 동질감을 가진 집단의 개인으로 만났다.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화한 자연주의 출산을 원하여 조산원 원장님의 집에서 출산과 조리를 하며 알게 된 사이였다.

한우리 조산원 모습, 2층 단독주택으로 1층은 산전진료와 출산을 하는 공간이고, 2층에선 조리를 한다


아이를 낳으며 알게 된 인연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어졌고, 연중 몇 번은 가족이 함께 만나기도 했다. 아이 친구 엄마라고만 말하기가 힘든 것은, 무더운 여름날 저녁에는 하우스 맥주를 한 잔씩 나누는 사이였고, 매년 돌아오는 영화제 기간에는 영화 한 편을 함께 보았고, 작년 봄에는 장범준 콘서트 함께 다녀왔다. 어쩌면 친구가 더 맞을까?


나는 '언니'라고 부르며, B는 나에게 'oo씨'라고 부르는 우리 관계는 어쩐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꽤 어렵다.


전문직 여성인 B는 복직하며 워킹맘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는 6세 8세를 키우는 전업맘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늘 좀 더 많이 챙김을 받게 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고, 이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내가 이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이다.


전업맘의 입장이다 보니 갈색병과 동급의 선물을 보내기는 부담스러웠다.

이전에 내가 해봤던 선물들은 5-7만 원선이었고, 그보다 좀 더 높여 현실적으로 가능한 금액은 10만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10만 원 선에서 할 수 있는 선물이 별로 없었다. 애매했다. 명품 화장품은 20만 원이 훌쩍 넘었고, 지갑이나 액세서리는 중저가에 그치는 금액이었고, (그래, 요즘 B가 걷기를 즐겨한다 했으니) 브랜드 러닝화를 사려고 하니 정확한 신발 사이즈를 몰라, 케이크+꽃은 또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다. 건강식품? 너무 올드하지.

러쉬(Lush) ; 러쉬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신선한 재료와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정직한 재료를 사용하여 모든 제품을 손으로 직접 만듭니다. (출처. 러쉬코리아 공식홈페이지)

그래서 친환경 코스메틱 브랜드의 bath용품을 고심 끝에 준비했는데, 이런... 아시아 마켓 제품들은 Made in Japan이라고 적힌 라벨이 제품마다 붙어 있었다. (B의 아이가 닌텐도를 원했지만 일본 제품임에 끝내 고사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결국 종목 변경...


적정선에 있는 프랑스 브랜드 화장품을 준비했고, B와 가벼운 점심을 가지며 선물을 전했다.


육아 이야기를 시작해 어쩌다 보니 우리는 대학시절 이야기도 하고, 자라던 유년기의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그럴 때 마주 앉아 있는 B에게 때로는 묻고 싶어 진다.


나는 당신의 친구인가요? 아니면 아는 엄마 중 한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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