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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an 15. 2021

불멍이란 것을 해보았다

어느 날, 장작나무 20kg가 택배로 도착했다

캠핑이란 것이 어느새 시대의 대세가 되어버렸다.


건너 집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는 이웃은 늘 주말이면 suv차량에 몇 개의 폴딩 박스를 담고 떠났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그 밤에는 어김없이 인스타그램에 캠핑 사진이 업로드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가 보다. (나 아들 둘과 남편, 살림살이 챙겨 들고나가서 밥해먹을 자신이 없는 사람)


그런데, 새해가 밝은지 얼마 되지 않아 택배가 하나 도착했는데.

택배 아저씨가 많이 무겁습니다(눈치 보며 네네) 하며 현관 입구까지 들어다 놓고 가셨다.

네모진 박스 뭐지?

싶어 끙차 들어서 거실에 넣으려니, 웬걸 너무 무겁다.

엎어진 박스를 들쳐 송장을 살펴보니, 장작나무라는 제품명이 눈에 띈다.

나무....? ...20kg?....


택배 주인이 도착하고, 요번 물품의 의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불멍이 유행이라네>

<불..멍? 불명?>

<불멍, 물멍, 숲멍, 바람멍이라고, 불 보면서 멍 때리기라고.>

<아, 캠프 파이어....그게 불- 머엉>

<한 20kg 정도면 어느 정도 타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간 김에 텐트도 치고, 연도 날리고, 불도 떼고.

그럽시다.>

(마음의 소리, 한파 시즌, 밖에 나가서 앉아 있다간 얼어 죽기 딱인데?)


그리하여 한파를 피해 (남쪽나라에도 눈이 내리고, 물도 얼고, 세탁기도 얼고, 건조기까지 얼었다) 1월 3주 차 영상 기온으로 회복되는 주간에 불멍을 떠나기로 했다.

(*나무장작 때는 것이 허가된 도시 근교 캠핑장이었습니다)


휴양림 캠핑장은 가봤지만, 허허벌판이 맞이하는 강변의 야외캠핑장은 처음이라 집 짓는 것 마저도 쉽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텐트 폴대를 잡고 서 있기가 주된 존재 이유처럼 느껴질 만큼 혹독하면서도 지난했다. (그 와중에 홀연히 나타나 혼자 뚝딱뚝딱 텐트 한 동을 세우는 능력자 분들을 보니 더욱 우리처지가 눈에 띄었다)

남편은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결국 텐트를 세우고, 밥 한 끼를 겨우 해 먹고 나니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지는 해가 우리를 마지막으로 비추고 완전히 사라졌을 때, 화로를 조립해 세웠다. 그리고 20kg 장작나무를 개시했다. 과연 1만 리뷰를 달성하는 나무답게 토치에 불을 붙이자마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에는 신비함이 있다. 나무가 재가 되어 사라지는 숭고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는 행위를 하게 되었을까.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주었다. 신의 불이라는 의미로, 불은 '광명'으로 여겨져 인간이 신의 지식을 얻어 각성하게 되었다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 정도 숭고한 의미를 담진 않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불멍이란 것을 한다. 모든 스마트기기,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데스크톱 등 넘쳐나는 정보로부터 벗어나 아무 생각 않는 것. 누구라도 그런 시간이 필요함을 반증하는 게 불멍, 혹은 물멍이 아닐까.


비일상적 풍경에 앉아 있으니 이 밖에 재밌는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해가 지고 사위가 깜깜해질 무렵 홀연히 백팩을 메고 등장한 이, 백패킹을 하는 이다.

일몰과 함께 호젓한 인디언 텐트를 쳤던 3명의 청년은 10시가 되니 웨건에 짐을 싣고 텐트를 철수해 떠난다. 퇴근박이다.

우리 캠핑장 옆 오토 캠핑장에는 소위 차박이라고 말하는 오토 캠핑러들과 캐러반을 연결해서 끌고 오는 트레일러 캠핑.

이외에도 최근 읽었던 <나의 캠핑 아지트><(서승범, 중앙books, 2020)에는 오지 캠핑, 미니멀 캠핑, 비박(심지어 프랑스어에서 온 용어다!), 자전거 캠핑에 카약 캠핑(<가보기 전에 죽지 마라>(이스다 유스케, 홍익출판사, 2005)에 캐나다 카약 캠핑이 나온다)까지. 정말 다양한 캠핑의 시대였다.


<이번 캠핑에 말썽이었던 텐트부터 바꾸고, 그 다음엔 저 건너편 텐트에 랜턴을 걸어두는 야외 스탠드가 근사해 보이네.>

<그러게 제대로 갖추려면, 텐트에, 스탠드에, 저쪽 팀은 전기난로도 있더라. 아 이거 다 실으려면 차부터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


모든 질문과 대답은 타오르는 화덕에 던져 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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