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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an 17. 2021

결혼생활에는 19호실이 필요하다

'화양연화', 그리고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화양연화가 4K로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했다.

아날로그 필름으로 촬영했던 영화를 디지털 포맷으로 바꾸는 것을 리마스터링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2011년이었다.

재밌게도 블로그를 찾아보니 그때 포스팅에도 <10년 전 영화를 보았다. 이질감이 없다. 감정도 연출도 완벽하다>고 짤막히 남겨져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다시 지나 2021년이 되었으니, 영화 개봉 20년이 지나며 거기서 나는 두 번의 발자국을 남긴 셈이다.


왕가위 감독의 연출에는 늘 스타일리시하다 감각적이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색감이 강하고, 대사가 절제되어 있으며, 편집 또한 과감하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에 반해서 영화를 보았다.

계단을 내려가 저녁을 사 들고 올라오는 첸 부인과 내려가는 차오의 모습이 화양연화 메인 Bgm과 함께, 모델이 무대에서 캣워크를 하는 것 마냥 근사하게 보였다.

첸 부인의 허리는 가늘고, 그녀의 목까지 감싼 치파오는 어쩐지 금기된 것을 욕망하게 하는 듯 유혹적이었다.

차오가 무협소설을 쓰던 신문사 편집실의 담배연기 마저 미장센을 완성시켰달까.


리마스터링 된 필름은 스크린과 음향이 개선되었을 뿐인데,

처음과 달리 영화의 모든 대사들이 가슴에 와 박혔다.


퇴근 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는다는 것.

그 쓸쓸함을 매 번 다른 치파오를 입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오던 첸 부인의 모습에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헤아릴 수 있었다. (나의 남편은 때로 불 꺼진 집으로 들어오고 싶지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첸 부인의 남편과 차오의 아내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은 각자의 남편과 배우자가 되어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차오가 첸 부인 남편이 되고, 첸 부인이 차오의 부인이 되어 대화를 나눈다)

"오늘 밤은 들어가지 마요."라고 말하는 차오에게, "우리 남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라고 첸 부인은 대답한다. 첸 부인 역시 차오 아내가 되어 남편 아닌 사람을 유혹하려고 흉내 내어 보지만 단념하고 만다. "못하겠어요."


이후에 차오가 소설을 쓰던 호텔에서 두 사람이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도 비슷하다.

"당신, 여자 생겼지?" "무슨 소리야." "여자 생겼잖아." "누가 그래?" "몰라도 돼, 여자 있는 거 맞잖아." 하면서 첸 부인이 차오의 뺨을 친다. "여자 생긴 남편한테 이렇게 살살 때려요?"라며 차오가 다시 해보라 한다.


10년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을 장면이다. 그리고 차마 뺨을 더 세게 때리지 못하고 그저 차오에게 기대어 우는 장면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사랑하는 관계에서 남겨진 이의 역할이라는 게, 비참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 초 남편이 다른 여자(옛 연인)를 만나서 나를 두고 돌아서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조차 마음이 시렸다. 비참했고, 막막했다.) 그런 두 사람이 이런 가상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덜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tvN, 2017)'는 드라마를 보면, 소설 <19호실로 가다(도리스 레싱, 문예출판사, 2018)>의 이야기가 나온다.

- 부부가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는 평범한 부부다.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방을 가지고 싶어 했고, 남편은 2층에 아내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그 방도 아이들이 드나들면서 다시 거실 비슷한 공간이 되었다. 아내는 집에서 떨어진 어느 호텔에 방을 하나 구해(19호실) 그곳에서 잠깐 머물다가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 아내는 그 방을 남편에게 들키게 된다. 남편은 그곳에서 무얼 하냐고, 아내는 자신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외도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 방의 의미를 들키는 것보다 오해받기를 택한 것이다.


19호실이 떠올랐다.

차오는 아내가 없는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호텔에 방을 하나 잡고, 거기서 소설을 쓴다. 그러나 그 소설은 혼자 쓸 수 없고 읽어 주는 이, 첸 부인이 필요했다. 첸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메모를 남긴다.

호텔 방문이 열리고 첸 부인이 서있다. (이 호텔 방에 들어가기 전 심란한 그녀의 심경이 거칠게 표현된다. 호텔 계단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가, 난간에 기대어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후에야 방에 문을 두드린다)

"당신이 올 줄 몰랐어요."

"우리는 그들과 다르니까요."


나는 이 대사에서 19호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배우자를 향해 복수 어린 외도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그들이 선택한 치유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농밀한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배우자를 욕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거기서 밥을 나눠 먹고, 글을 쓰고, 나눠 읽었다. 그 시간이 그들이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방법처럼 보였다.


첸 부인은 그녀의 남편 곁을 지키고자 했다. 그랬기에 차오는 그를 조금 도와달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은 남편 곁을 떠날 수 없으니, 남편을 잘 지켜요."라며 돌아서 걸어간다. 그리고 페이드 백.

그다음 장면에서는 차오에게 기대어 펑펑 우는 첸 부인의 모습이 나온다. 헤어짐 연습을 해보는 것이었다. "울지 말아요, 연습이니까." 두 사람을 태운 택시는 떠난다. 택시 안에서 첸 부인은 "오늘 밤은 들어가지 않을래요."라고 말한다. 차오의 어깨에 조용히 머리를 기대는 첸 부인의 뒷모습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흐른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두 사람이 하룻밤을 보냈냐 보내지 않았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그런 것보다 배우자가 겪었던 과정을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해보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의 배우자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는가.'

"그들도 이렇게 된 거겠죠."라는 대사에서 배우자를 향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에서 벗어나는 그녀를 보았다.


영화를 같이 본 지인은 영화 시작 전 이렇게 말했다.

"조금 찾아보니 불륜에 관한 이야기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그 말을 들은 나는 놀랐다. 불륜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륜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부정적 어감과 영화 속 첸 부인과 차오를 연결시킬 수 없었다. 내가 화양연화를 떠올릴 때면 서로에게 물드는 감정과 이별. 그게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양연화, 인생의 꽃같이 아름다운 때. 그들은 배우자를 잃고(감정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서로를 만났다. 라디오에서 dj가 일본에 있는 첸 부인의 남편이 신청한 화양연화를 사연과 함께 소개하고 노래를 틀어줄 때, 벽 하나를 두고 첸 부인과 차오는 그 노래를 함께 듣는다. 그들이 맺은 관계가 인생의 꽃같이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혼이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첸 부인의 대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당연한 선택으로 여기며 결혼을 한다.

우리가 했던 수많은 선택에 책임이 따르듯, 결혼 역시 서로의 인생을 책임짐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혼이 더욱 혹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 상대방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평생의 여정이 때로는 힘에 부친다.


어쩌면 그들 역시 삐걱이는 결혼 생활에서 혼자만의 19호실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그 방의 이름은 2046이었다.

왕가위 감독은 2004년에 <2046>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거기서 두 사람은 단 한번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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