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답안지를 보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학교를 들어가면서 한글을 다 떼지 않았거나, 기본적인 수연산에 서투르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 마음을 무겁게 한다. 교육청에서 나오는 공문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초부터 차근히 배운다지만 허울 좋은 구호 정도가 될 뿐이다. 실제로는 3학년부터는 영어가 정규과목으로 시작하기 때문에(이마저도 건너편 사립학교에서는 1학년 때 이미 특활 수업처럼 다 편성되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영어를 3학년 전에 끝내고, 이후에는 남은 시간 모두를 수학으로 돌린다는 말이 사교육 시장의 지배담론이다. 3학년부터는 수학 학원은 2군데를 다닌다는 이야기 등, 들으면 괜스레 심란해지는 이야기들을 종종 반 강제적으로 접하곤 한다.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든다.
아토피가 심한 둘째는 둘째대로, 제대로 발달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둘째 병치레에 첫째는 그만큼의 그늘 속에서 큰 것만 같다.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이 흐르는 이유는 오늘 아침 겪은 일 때문이 크다.
한 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방 안에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냈다.
1학년이 된 아이는 방학을 맞이하여, 아빠와 함께 스프레드시트로 계획표를 만들었다.
계획표라지만 사실상 어른들의 to do list 비슷한 것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10시 취침, 8시 기상)
하루에 30분 운동하기, 30분 독서하기
연산력 수학 1장 풀기
국어 문제집 1 바닥 풀기(비문학 지문이 실려 있고, 그걸 읽고 3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리고 방학과제인 독서기록장과 일기는 주 1회 (수, 목 이렇게 할까? 하니 네!라고 답했다)
기본습관을 만들기에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건 내 생각)
아이는 약간의 강박관념을 보였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끄적끄적하고, 아침 먹고 나선 국어 문제집도 얼추 읽으며 풀어나갔다.
그렇게 방학이 3주가 지나고,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탁에 앉아 수학을 푸는데 <너무 어렵다아아. 학교에서는 이런 것 배우지도 않았는데. 아 앞에 20문제 뒤에 30문제 너무 많다>하면서 들으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너도 아침부터 깨지도 않은 뇌를 붙들고 힘들겠지. <그럼 엄마가 10문제씩 풀어줄게, 그리고 네가 10문제 풀고, 나머지 10문제는 동생한테 좀 도와달라고 하자>라고 하며 위기를 그럭저럭 넘겼다.
거실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자니, 동생이 자꾸 방문을 닫으려고 해서(방문 위에 옷걸이가 걸려 닫히지 않고 있었다) 가서 도와주려고 보니, 큰 애가 연필을 쥐고 방문 쪽을 흘끔히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책상을 보니 국어 문제집 답안을 몰래 펼쳐서 보고 있다. (거실에 있는 엄마 들으라는 듯 지문은 크게 소리 내어 읽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안 했음 싶다. 하루는 쉬고 건너뛰어도 되는데, 본인의 성격상 계획표대로는 해야겠고, 하려니 너무 하기 싫고 그런 거다.
지난 상반기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는 이상하게 머리끝까지 화가 나 답안과 책을 다 치웠다. 그때의 상처를 둘 다 기억하고 있기에 그냥 조용히 밥상을 차렸다. 본인도 앉아서 꾸역꾸역 읽고 적더니 다했으니 답안을 매기겠다 한다. 그래서 그냥 나중에 엄마가 볼게 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서글펐다. 화내는 것도 의미 없고, 공부하라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냥 자유시간해.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하며 방에 들어와 어제 읽다만 책에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내 마음이 이렇게 무겁고 양쪽 어깨가 축 처지는 건 왜일까.
나는 아이에게 상처를 받았다.
똑똑하고, 빠르고, 센스 있고, 반에서 1등, 반장감,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그냥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기쁘게, 잘하지 못해도, 하려는 태도? 해보려는 마음가짐 정도를 바란듯한데 그게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 힘든 거다.
지금 느끼는 마음의 쓰라림 속에는 무엇이 있나 살펴보았다.
3학년의 내가 있었다. 어쩐지 나이가 60은 다 되었을 카랑카랑한 담임선생님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너무 쉽다) 부반장과 짝지가 되었을 때, 책가방을 가운데에 두고 쪽지시험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 컨닝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내가 그냥 지우개만 빌렸을까, 정말 부반장의 답안을 보려고 했을까.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선생님의 주의만이 내 행동이 부적절했음을 인지시킬 뿐.
4시가 되면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때 엄마를 졸라서 탑학원이라는 곳에 등록하고 수학 수업을 들었다. 주어진 문제를 다 풀어야 집에 가는데, 국어인지 수학인지 모를 긴 지문의 수학 문제들을 제대로 다 풀지 않고 선생님이 없을 때 답안을 보고 적당히 적어 넣은 후 검사받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 투영된 아이의 행동을 보니 어쩐지 뜨끔하기도 하고, 서글프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청출어람'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랗게 질린 가슴이 더 시려오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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