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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an 26. 2021

예쁜 건 다음 생에

울림이 있는 단어들이 있다.

고맙다. 보고 싶었다. 


울림이 없는 단어들도 있다. 그 말은 내뱉어지는 즉시 유령처럼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말들.

오늘 예쁘네. 예쁘게 하고 왔네.


그런 말들은 어쩐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어색한 표정만 짓게 하는 말이다.


예쁘지 않아서 아쉬운 순간들이 있었다.

대학 신입생 첫 동기 MT 때 짝피구에 남는 남자아이와 어쩔 수 없이 한 팀이 되어야 했을 때.

앉고 싶은 아이랑 짝지가 되었는데, 그 아이가 얼굴이 하얗고 눈웃음이 예쁜 부반장과 앉고 싶다고 손들고 말하던 순간.

한껏 신경 썼던 대학 졸업 앨범에서 내 사진을 찾았을 때.


그렇게 책상 앞에 놓아둔 거울을 반대쪽으로 돌려놓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예쁘다는 말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앉고 싶은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같이 앉을래?라고 말하며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그 옆자리를 차지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연애의 기회가 찾아오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적극적인 어망을 던져가며 연애를 했다. 구차하게 시작한 연애일지라도, 상대방이 날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던 나날들이 이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끝내 입 밖으론 내지 못했던 질문은, 나는 예쁘지도 않고, 사랑스러운 구석도 없는데 왜 나를 만나는 거야? 였으니, 실제로 숱한 연애를 겪으면서도 ‘예쁘지 않음’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날 순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잊혀져 가던 그 질문이 어느 날 떠올랐다.


“엄마 좋아요.”

“엄마가 왜 좋아? 엄마는 수수한테 화도 많이 내고, 혼내기도 하고 또 엄마는 예쁘지도 않은데?”

“그래도 좋아요, 그리고 엄마 예뻐요.”

“아니야, 수수 마칠 때 학교 앞에 가보면 진짜 예쁜 엄마들 많드라. 근데 엄마는 별로 안 예쁜 것 같아. 거울 보면서 예쁘다는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아닌데, 엄마 진짜 예쁜데?”

라는 말에 피식 웃었다.


건너편에 걸어오는 남자가 그리 말했다면 나는 고개를 내저었을 것이다.

대학 때 만났던 동기 남자 친구가 예쁘다는 말을 했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 정말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내게 그리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제 결혼했으니까.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건넨 대답은 이상하게 마음에 파장을 만들어내고선 오래도록 남았다.


예쁘다는 것에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과, 마음으로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녹아들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6학년 때 부반장과 자리를 바꾸기 위해 묵묵히 가방과 소지품을 챙겨 자리를 옮기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20년 후에 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 둘을 만나게 될 거야. 세상에서 너를 제일 예쁘다고 여기는 남자아이 둘이 기다리고 있거든. 


이미지 출처. Photo by dylan nolt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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