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비교했을 때, 1일 장보기에 가용할 수 있는 비용이 늘었는데 그게 가장 큰 이유다.(타지에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건강이 최우선이다!)
청년, 노인 등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주택가 중심에 위치한 라이프 마트에는 델리코너가 특히 발달해있었다. (도시락 그 이상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찬이며, 완조리된 고기반찬들, (보통은 뒷정리 때문에 꺼리게 되는) 생선구이, 각종 튀김, 한 끼식 먹기 좋게 담긴 싱싱한 야채샐러드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마련되어 있었다. 델리코너에서 슥슥 몇 가지 담아오면 저녁거리에 대한 부담감이 확 줄었다. '일본 생활 좋구나!'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우나 추우나 매일 장을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주하던 집의 냉장고가 200L 정도였고, 실제로 마트에서도 모든 것들이 소분되어 있어서 한 번 사면 다음이랄 게 없이 모든 재료가 다 소진되곤 했다.
1/8 크기의 수박이 진열되어 있었고, 1/6로 커팅된 멜론이 2줄 들어있는 건 한 끼 점심식사로 땡이었다.
돼지고기도 보통 2-300g, 소고기도 150-250g, 달걀도 10입, 쌀도 2kg(옆에 큰 것도 있다 5kg...)
게다가 마늘은 한통(한쪽이라고 하자)에 300엔(으악), 특히 잡.곡.도. 굉장히 비쌌다.(잡곡밥 안 드시나요? 후덜덜)
여러모로 대식가가 살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고, 장을 보고 돌아와 바구니를 풀어놓을때면 차라리 외식하는 게 더 낫겠단 생각도 종종 들었다.
처음 도착한 날, 남편의 동료였던 Santtu(from 핀란드, 고베 라이프가 1년 반이 넘은 생활의 고수!)는 장보는 것을 도와주며 본인은 거의 외식을 한다고 말했다. 장을 봐서 만들어 먹는 것 역시 이곳에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과일 1가지, 야채 1가지, 고기 1가지(or 생선) 유제품, 간식, 물 이렇게만 사도 3-4천엔(32000원-42000원)은 금방이었다. (1주일에 한 번은 쌀을 사야 했다 +쌀값, 평범하게 고시히카리가 널린 곳)
생선과 고기의 부위들이 한국식 재료와 딱 맞진 않았지만, 최대한 비슷한 걸 사 와서 흉내 내어 만들곤 하던 날들이었다.
꽉 찬 장바구니를 계산대에 올리면 정성스럽게 계산하여 빈 바구니에 테트리스를 하듯 꼼꼼히 넣어주던 캐셔분들이 떠오른다. '다시 내 장바구니에 옮겨 담을 건데... 저렇게 예쁘게 담아줄 필요 없는데.' 싶으면서도 그분들이 하나씩 바코드를 찍어 어디에 넣을까 고심하며 담아준 물품들이 꽤 소중하게 느껴졌다.(귀한 내 한끼)
집 근처 2마트를 떠올려보면, 어른이라도 들어갈만한 카트에 수북이 쌓인 물품을 재빠르게 계산대에 올리고 서둘러 나가서 캐셔분들이 바코드를 찍고 휙휙 넘겨주는 상품들을 다시 빠르게 카트에 쑤셔 넣어야 하는데...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받은 영수증이 어찌나 큰지, 그것도 며칠은 어색했다.
우리는 왜 이리 크게 만드는 걸 좋아할까? 영수증도 크고, 휴지도 한롤에 30개씩 (고베 마트에선 12개 든 게 최선이었다. 당연 일본에서도 코스트코 같은 곳을 가면 벌크형이 있다!) 계란도 한판에 30개.(게다가 요즘은 코스트코에서는 30개입을 두 개 묶어서 팔더군요!) 어느새 미국형 창고 마트인 코스트코에 가는 것 마저 일상이 되어버린 한국의 소비문화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거대화 되어 있었다.
결혼할 때는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800L 냉장고를 샀었다. 아마도 첫 신혼집에서 가장 컸던 가전이 냉장고였을 것이다. 작은 거실에 툭 튀어나온 냉장고는 동선마저 방해했는데, 그게 불편하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냉장고는 다 큰 거 쓰니까. 큰 냉장고를 쓰니 마트에 가도 고민 없이 척척 사고, 냉장고에 집어넣고, 잊어버리고, 기한이 지나서 버리고, 또 사다 넣고를 반복했다. 기한이 지났더라도, 음식을 버릴 땐 괜히 죄스러웠다. 그런 마음을 자주 오래 품었다.
고베에서 일반쓰레기에 음식물쓰레기를 함께 버리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닌 게 맞다. 남은 음식물이랄 게 나올 게 없는 구조였다. 깨끗이 손질된 식재료들, 소분되어 있는 과일들. 수박을 하나 먹더라도 수박껍질이 한가득 나오는 우리 밥상과는 좀 달랐다. 1/8 수박의 밑동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한국 집에 있는 냉장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큰 냉장고를 깨끗이 정리하고, 그 자리에 200L 냉장고를 들였다.
이 냉장고에는 여름에 수박 8-9kg짜리 한 통이 들어가고, 친정집에서 챙겨주는 김치통도 들어간다. 냉동실에는 군만두 묶음도 들어가고, 코스트코에 파는 냉동 볶음밥 7봉도 들어간다! (10년이 지나도 우리 아이 돌 떡이 나올수 없는 냉동실, 모든 것은 (냉동)한 달을 넘기지 않기)
200L도 불가능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사넣고, 정리하고, 사넣고, 정리하고) 대신 이제는 냉장고에 오래 들어가 있었던 싱싱함을 잃어버린 야채를 먹을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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