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을 잘 나타내는 단어는 '이방인'이다.
Stranger, 낯선 사람, 소수.
다수의 눈에 나는 그리 보였을 것 같다.
02. 남달리 키가 큰 이방인
다섯 번째 생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겠지.
'학교 갈래?'
부모님의 물음은 당신들 환갑 전에 늦둥이를 대학 졸업까지 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 하에 시작됐다...
고 들었다.
아마도 이 야심찬 계획에는 또래보다 살짝 큰 키도 고려의 요소였을 거다.
적게는 10개월, 많게는 22개월 차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서있어도 중간 정도의 키는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또래 중에는 큰 편에 속했을 거다.
기억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과 드문드문 기억나는 고학년을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키가 조금씩 자라더니, 급기야(?) 고등학생 때는 170cm가 훌쩍 넘었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더 자랐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의 키가 185cm를 넘는 장신이시니 나의 키는 이미 예견된 거였을까.
예전 버스는 뒤쪽으로 가면 버스 천장에 뚜껑을 여는 게 있었는데(왜 있었지?) 장신인 아버지는 낮은 버스의 천장 때문에 늘 그 근처에 서계셨다고 했다.
어린 시절 엘리베이터를 타면, 함께 타는 아주머니들이 '아이구, 배구 선수 가족 왔네'. 어떤 날은 '농구 선수 가족 왔네'하시곤 했다.
운동선수 집 아닙니다만.....
몇 초 되지 않는 엘리베이터 탑승 시간이지만, 친근함을 표시하기 위한 스몰 토크 주제였으리라 생각한다.
이쯤 되면 '별 게 다 이방인이다', '키 큰 게 좋지, 뭐 자랑이냐' 할 사람들도 있을 거다.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는 남과 다르면서 유달리 어떠하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버스나 지하철처럼 밀폐된 공간에 들어서면, 일제히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이구야, 뭐 저리 크냐'라는 말풍선들이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
170cm만 조금 넘어도 괜찮았을 텐데, 거기에서 5cm가 더 커버렸다.
게다가 어렸을 때는 말라깽이, 꺽다리 이미지에 키만 크고 볼품없는 그런 느낌이라 멋있게 키 큰 언니가 아니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100명에 98명이(2명 어디 갔니?) 물어본다.
'아이구. 키가 되게 크시네요. 저 몇 cm만 떼어주실래요? 허허'
지금은 '줄 서신 분들이 많아서 번호표 뽑고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라고 맞받아치며 농담도 하지만, 어릴 때는 그것조차 잘 되지 않았다.
다르다는 게 부담스럽고 그저 싫었다.
따뜻한 시선도 아니고 다른 게 희한하다는 느낌의 다소 차갑고 낯선 시선들이 싫었다.
이방인을 대하는 듯 한 시선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서있을 때는 짝다리를 짚었고, 굽은 등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짝다리와 굽은 등을 한다고 숨겨질 키가 아닐 텐데, 그 때는 그렇게 해서라도 다수에 포함되고 싶었다.
짝다리는 틀어진 골반을 데려왔고, 굽고 힘 없는 등은 요통을 데려왔다.
가끔 사진 속 나의 자세를 보면, 밉기 그지 없었다.
흰 머리를 얼른 뽑아버리고 노화와 상관없다고 하는 것처럼, 사진 속 나는 내가 아닌 양, 빨리 덮어버리고 지워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아닌 게 아닐 텐데, 나는 나를 부정해왔다.
어쩌면 타인이 나를 이방인으로 대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부정하고 소외시키며 이방인으로 대한 게 아닐까.
키가 크다고 말한 사람들은 친근하게 다가오기 위함이었고, 대중교통 속 불특정 다수는 나의 키를 쳐다봤다기보다는 각자의 시선들이었을 뿐인데, 내가 크게 부풀려서 생각했던 건 아닐까.
나로부터 소외당한 나는 오랜 기간 외롭지 않았을까.
나는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