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움베르트

by BONNIE C


“아따, 폼은 완전 작가고만잉.”


어느 때처럼 날 놀리기 바쁜 Y가 한 마디 툭 던진다.


“한 마디만 더 해 봐라.” 내가 흘깃 쳐다보자,


“그러다 목 빠지겄다.”


나는 그러려니, 들은 척도 않고 찰칵 찰칵 셔터를 눌렀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마는 심술꾸러기처럼.


궁시렁대던 Y도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작은 배낭을 메고, 오른쪽 어깨에는 카메라 가방을, 목에는 카메라를 걸었다. 옆에서 보면 목이 15도쯤 굽어 있었을 것이다.


큰 배낭을 메고 걷는 동안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미니멀리스트처럼 길을 걸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실상 배낭 속은, 작기만 했지, 자잘한 것들로 가득했다. DSLR 카메라는 폭우라도 만나면 고장 나기 쉬운 물건이었다. 전기가 없는 곳에선 배터리조차 무용지물이었다.


“카메라 조리개는 사람의 눈처럼 풍경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O 사진작가님의 말이 떠올랐다. 알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한 조각이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낯선 이국 땅에서 마주한 낯선 얼굴들이 유난히 눈부셨다. 당차게도, 그 얼굴들을 모아 작은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꿈도 키웠다.




어느 화사한 봄날, 보스턴에서 돌아온 S를 만났다.


“언니, 나 결혼해요.”


“어머, 결국 하는구나. 축하해.”


“부탁이 있어요.”


“말해 봐.”


“사회를 봐주면 어떨까요?”


“내가?”


“언니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결혼식 사회는 보통 신랑 친구가 보는 게 관례였다.


“신랑 친구가 더 낫지 않을까?”


“모두 너무 멀리 있어요.”


S는 내가 애정하는 동생이었다. 신랑도 미국에서 온 문학소년 같은 영어강사였다. 신랑 측 누군가에게 부탁하더라도, 내가 공동 사회를 봐줬으면 한다고 했다. 한옥집 한 채를 빌려, 가족과 몇몇 지인들만 초대하는 자리. 그녀는 모든 하객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결혼식을 꿈꿨다.


사회 본 경험은 없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 해볼게”


“고마워요, 언니.”


“스냅사진도 예쁘게 찍어줄게.”


그 말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니콘 D90 DSLR 카메라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결혼식 날, 나는 빨간 장미가 그려진 스커트에 검정 가디건을 걸쳤다. 대청마루 위에, S와 그녀의 남편은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서 있었다. 나는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며 하객들의 표정을 살폈다. 묘하게도 내가 동서양을 잇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피로연이 시작되자, 나는 카메라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꽤 괜찮은 사진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남아프리카에서 온 M이 다가왔다. 길고 부드러운 얼굴. 하회탈처럼 웃고 있는 그녀는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었다. 사진을 전공했고, 포토그래피 전문 SNS 계정도 운영한다는 그녀는 내 카메라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안목 있는데?!”


“움베르트야.”


나는 카메라에 붙인 이름을 말해 주었다.


“움베르트를 위하여!”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해는 기울었고, 모두 흥에 겨워 밤이 길어질 것 같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 주세요.”


택시는 서서히 출발했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어깨에서 느껴졌던 묵직한 무게가 사라졌다는 걸.


카메라 가방. 움베르트를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아저씨!”


절규하듯 외치며 구두를 벗어던지고 택시를 향해 뛰었다.


택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교통방송에 연락하면 택시 기사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손만 조금 빨리 뻗었더라면. 아니, 택시 뒤꽁무니를 두들길 수 있는 거리만큼 빨리 알아챘더라면…


휴대폰 버튼을 누르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카메라 말고, 네 가슴에나 담으랬지!.”


Y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