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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맞아 고기세트 선물이 들어왔다.
오늘 저녁은 단백질 충전이다.
고기만 굽기엔 아쉽고, 뭔가 곁들일 야채나 채소가 없을까 냉장고를 열었다.
신선칸에는 애호박 반쪽, 알배추 절반, 시금치 한줌이 남아있었다.
다 넣고 볶으면 그게 바로 가니쉬 아닌가? 사실 잘 모른다.
우리집 레스토랑은 내가 요리사니까 내 맘대로 한다.
은은한 조명만 켜둔 채로 도마와 칼을 꺼내면
정신없이 요리하던 습관이 조금 사그라든다.
혼자 사부작거리면서 칼질을 하고 깨끗하게 재료를 준비했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파, 애호박, 알배추, 시금치 순으로 넣어 볶았다.
중간중간 소금후추를 갈아서 간을 더해줬다.
고기는 따로 후라이팬을 꺼내서 구웠다.
요리 중에서 가장 자신없는 요리를 고르라면 나는 첫번째로 스테이크라고 말한다.
국이나 반찬은 조리 적정 시간을 좀 어겨도 상관이 없는데(오히려 더 맛있을 때가 많다.)
스테이크는 언제까지 팬에서 달궈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왜인지 굽기 시작할 때부터 신경 쓸 게 많은 것 같다.
그래도 계속 해봐야 조금이라도 감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도 내가 구웠다.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
썰어보니까 안이 하나도 안 익어서 자르고 다시 구웠다!
남편이 여기가 바로 레스토랑이라면서 와인잔 두 잔을 패기롭게 꺼냈다.
뒷정리 후 세팅된 식탁에 가보니 와인잔에는 물이 담겨져 있었다.
(술 잘 안 먹는 부부)
부드럽고 짭쪼롬한 저녁 한 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