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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히 Aug 07. 2020

나무는 변화를 줄 수 있어

기회는 단 한 번뿐일까

 몇 번을 썼다 지웠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 봐도 안 되자 또 컴퓨터를 꺼버렸다. 내일의 나는 좀 다르겠지. 만족할만한 글이 나오겠지 믿었다. 결과는 없지만 고생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온갖 스트레칭과 하품을 했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걸어 간 안방에는 내 편이 쉬고 있었다.

 수고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 오래 걸린 것 같다는 말에 또 끄덕, 잘 썼냐는 말에 절레절레.

 하도 당당하고 가볍게 대답해서 내 편은 '또 잘해놓고 엄살 피우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아닌 걸. 잘 쓰고 못 쓰고를 따지기엔 한 문장도 못 썼다.


 글을 쓰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게 된다고 한다. 글솜씨? 가치관? 마음? 이런 걸 알아가기도 전에 먼저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욕심이 많다.

 중학교 1학년 때 있었던 백일장이 떠올랐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는데 나 혼자 모든 이들의 눈치를 보고 살던 사춘기, 딱 하루만큼은 주변에 신경도 쓰지 않는 날이 있었는데 바로 백일장이었다. 대충 쓰고 놀기 바쁜 친구들 사이에서 어찌나 열심히 쓰던지 선생님도 와서 쉬엄쉬엄 쓰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나는 조급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걸 다 쓰고 싶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이야기 한 편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백일장 산문답게 얼마나 길게 정성을 담아 썼는지, 상을 받았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그 글을 손글씨로 적어 액자로 만들어 복도에 걸어뒀는데, 선생님은 나를 불러 내용이 많으니까 줄여오라고 하셨다. 그때 어리둥절하게 대답했다.

 "줄일 게 없는데요?"

 이 똥고집으로 선생님과 몇 번을 면담했는지 모르겠다. 기억으로는 그 액자에 맞추려면 기승전결 중 전결만 담아야 했는데, 그게 무슨 이야기글인가 싶었다. 결국 액자 제작은 해야 하니까 기 (한 줄) - 승 (한 줄) - 전 - 결로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저 시절부터 글이 쓰고 싶었다. 무슨 글이든 내 언어로 정리하고 간직하는 게 좋아서였다.

 그렇게 정리할수록, 간직할수록, 어쩌면 쓰기 전부터 나를 사로잡은 게 있었다. 내 글은 이랬으면. 이런 분위기였으면. '이랬으면'이라는 공백은 매번 다른 단어로 채워졌다. 마냥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길 바라다가도 냉철했으면 좋겠고, 슬퍼 죽겠는 얘기를 하다가도 재미있길 바랐다. 다 모아보니 결국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거였다.

 

 욕심은 자라는데, 나는 자라지 않았다.

 만족이라는 결승선은 멀어져만 가는데, 나는 아직 뛸 힘이 부족한 마라토너다.

 매일 아침이 밝아오면 출발선에 서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손발을 털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가볍게 후 내뱉었다. 또 내뱉었다. 발이 움찔거리지만 선뜻 내딛기 무섭다. 1등 해야 되는데, 지금 출발하기에 내 몸은 완벽한 상태인가? 물 한 모금만 마시고 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중간에 쓰러지면 어떡하지? 오만 가지 생각이 들면서 내 발은 어느새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때 내 등에 따뜻한 손바닥이 닿았다. 그리고 내 옆에 서서 무작정 출발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그 소리를 처음 들어봐서, 너무 놀라서 일단 나아갔다.

 어느새 나는 뛰고 있었다.


 출발 방아쇠를 당긴 건 내 편이었다.

 내가 시작을 두려워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해해주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편은 신중을 가하다 놓친 기회들이 쌓이면서 일단 시작하는 습관을 들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매번 같은 문제로 나아가지 못할 때마다 위로와 함께 시도해볼 것을 권했다. 완벽주의 성향을 버릴 수 없다면 여러 번 고쳐나가면서 완성에 가까워지면 된다고도 했다.


 하루는 신혼집에 놓을 가구를 함께 만들면서 내 편에게 나무를 배웠다.

 협탁은 초보인 내가 맡았는데, 망치로 두들기는 건 한다 쳐도 전동 샌딩기를 켜는 순간 기계와 함께 내 심장도 덜덜 떨렸다. 여기까지 만들었는데, 나뭇결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다 깎여버리면 어떡하지? 한쪽이 비뚤 해지면 어떡하지? 또 오만 가지 상상을 했다. 나는 이 작업까진 못하겠다고 샌딩기를 건네자 내 편이 말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일이 있어. 만드는 순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신중을 가해야 하는 일. 그런데 나무는 변화를 줄 수 있거든. 대패질로 수평을 맞추고, 표면을 다듬고, 흠 난 부분을 메꾸고, 또 메꾼 자리를 샌딩기로 매끄럽게 만들어주고. 잘못되더라도 끝이 아니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샌딩기를 다시 내 손에 쥐어주는 걸 받으면서 멍하게 서있었다. 나는 그때 겁먹고 있는 일, 그렇기 때문에 미루고 있는 일이 떠올랐다.

 내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시작은 완벽할 수 없다. 부족한 게 많지만 그것만 신경 쓰다간 놓쳐버리는 시간이 늘어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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