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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히 Aug 09. 2020

나무는 어떤 모습으로도 사랑받는다.

우리도 나무와 다르지 않다.

 어느 나라인지 모를 재즈 음악 위로 기계 돌아가는 소리, 망치 두들기는 소리, 대형 선풍기가 탈탈 돌아가는 소리가 겹쳤다.

 그칠 줄 모르는 궂은 빗방울을 배경 삼아, 한적한 시골 속 목공방은 평화로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무언가를 참고 있었다. 표정이 없어진 지는 오래였고, 너무 참아서 온몸이 저리듯이 열이 올랐다. 마치 어릴 때로 돌아가 무작정 떼를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누군가에게 화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화가 안 난 것도 아니었다.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른이었다. 이유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티 내는 건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떠넘기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렇게 떠넘긴다고 해서 내 기분이 홀가분해지는 것도 아니기에. 이럴 땐 참고 있는 응어리는 내려놓고 잠깐이라도 현재 내 앞에 놓인 상황에 최대한 반응해보는 게 나만의 방법이었다. 

 당장 내 앞에 놓인 상황은 내 편과 함께 작업실에 있다는 것. 내 하루는 내 편의 하루이기도 하니까 늘 별 탈 없이 지나가길 바랐다.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내 기분은 무조건 넣어둬야 했다. 배배 꼬인 매듭을 겨우 조금씩 풀어나가는 것처럼 기분을 풀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작업이 끝나고 내 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여느 때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따라 부르고, 신나게 열창하는 내 편을 보면서 배 잡고 웃으면서 집에 도착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원목 도마를 분류하는 일이었다. 나무에 문제가 없는지, 레이저로 새겨진 문구가 비뚤 하진 않는지, 손잡이가 매끈하게 마무리되었는지 등등 확인해보고 하자가 있으면 빼야 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목공 남편을 둔 아내로서 어깨너머 봤다면 하자 구분은 해야지 하면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확인해보는 원목 도마마다 외쳤다.

 "다 좋아!"

  내 편은 내가 넘겨주는 도마를 한참 자세히 보고는 안 되는 이유가 있으면 알려주었다. 이유는 주로 나무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하다가 못 쓸 상태가 되어버려서였다. 내가 보기엔 다 멋있기만 했지만 아쉬워하며 다른 한편에 옮겨두었다.


 100개 남짓한 원목 도마는 단 하나도 겹치는 디자인이 없었다. 도마의 크기는 작으니 간단하게 플레이팅 하기 좋아 보이고, 크니 여러 재료들을 얼마든지 썰어도 될 것 같았다. 나무의 중심부로 갈수록 색이 짙어지는 만큼 색감도 밝은 색감과 어두운 색감으로 나눠져 조화로웠고, 나무의 결도 모두 다 달랐다. 전체적인 형태까지 똑같은 것 없이 다양하니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것이었다.


 양손에 도마를 쥐고 개성 있고 멋있다며 중얼거리면서 관찰하는 나를 보던 내 편은 나지막이 물었다.

 "기분이 안 좋아?"

 들켰다.

 "아니, 최곤데?"

 더 길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냥 그렇다고 넘어가 줬으면 했다. 내 편은 가만히 도마를 들여다보는 걸 몇 번 반복하더니 말을 꺼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때 억지로 좋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도마를 보면서 어떻게 생겼든 다 근사하다고 말한 것처럼, 긍정적인 기운이 아닌 네 감정들도 다 근사하고 소중해. 나무는 깔끔하게 다듬지 않아도, 자연에서 있는 그대로 우리 앞에 오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여겨지고 사랑을 받기까지 하지. 난 그래서 나무가 좋고, 나무를 억지로 바꾸고 싶지 않거든. 너도 나무랑 같아. 지금 네 마음 그대로를 보여줘. 그래도 돼."


 언제나 기분 좋은 상태로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습관이 되어 예민한 내 모습을 둔해 보이도록 만들고 계속 외면해왔다. 예민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무엇이 기분을 가라앉게 하는 건지 알고 싶지 않았다. 원인을 굳이 알아내면 그걸 해결해야 할 것 같았고, 해결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감정이 나를 갉아먹었다.

 나도 포기했던 내 감정을 들어준다는 내 편의 한마디로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곪아왔는지를 느꼈다. 이렇게 한 발짝씩 알아가는 것부터가 내가 나다워지는 첫 단계겠지. '기분이 안 좋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연습에 빠진 나를 바라봐주는 내 편의 모습.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숨겨도 표정에서 다 보여."

그래, 알겠다. 이렇게 또 한 번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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