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건 결국, 그 시절의 나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서울에 두고 온 단칸방이 그리워 눈물이 났다.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며칠 머물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는
이번엔 고향집이 그리워 눈물이 났다.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직장에서
사람이 힘들고, 나의 한계를 마주하여,
짐을 챙겨 나오던 퇴사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사람은 의외로 바로 나였다.
힘들던 기억만 가득했던 집에서 이사를 나올 때도,
숨이 막히도록 슬펐던 사람은 나였다.
나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익숙한 것과 이별하기가 유난히 힘든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알았다.
그리웠던 건 그 공간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였다.
그 방의 공기, 낡은 조명, 어두운 밤 -
그 속에서 하루를 견디던 내가 그리웠던 거였다.
서울의 단칸방이 그리웠던 이유는
외로움과 자립을 처음으로 배웠던 내가 있었기 때문이고,
고향집이 그리웠던 건,
엄마아빠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어린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발로 나온 첫 직장에서는
내 능력 이상으로 잘 해보고자 애쓰던,
조심스럽고 순수했던 사회 초년생의 내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쳐 있었고, 때로는 무너졌고,
그래도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어도, 묵묵히 살아가던 나.
그 나를 떠나보내는 건,
내가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과 이별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리움과 슬픔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애도이자 사랑이었다.
그때의 나를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놓아주는 과정이었다.
그 시절의 방, 그 시절의 골목길, 그 시절의 냄새 -
그 안에 남아 있는 건 결국 그때 나의 호흡이었다.
그 공기 속에는 내 웃음과 울음, 내 고민과 결심이 남아 있다.
그래서 떠날 때 슬픈 건
장소가 아니라,
이제 그 흔적 속에 더는 내가 머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의 나도 언젠가 똑같이 그리워질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매일
무언가를 지켜내고 있고,
두려움 속에서도 움직이고 있고,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믿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떠남은 상실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몇 번의 이별을 통과해왔다.
한 시절의 공간을 떠난 후에도,
그 당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격려할 수 있다면
나는 훨씬 단단해진 자신으로 다음 공간을 만들어갈 준비가 된다.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의 나도,
이 공간도, 그리운 시절의 내가 될 것이다.
그때의 나, 잘 지냈구나.
이제 내가 이어받아,
조금씩 새 계절로 넘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