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다 내 미래와 마주하다

칼 융의 '인생의 오후'

by 조자연

나는 매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

10년 후, 20년 후.


어떤 걸 더 배워야 할지,

어떤 경험을 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하는 선택 하나하나가

과연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해 줄 수 있을지.


그런데 그 고민을 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내 10년 후, 20년 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을까?'


아이들이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찾아

스스로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행복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삶의 방향을 잘 찾아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로도 향하고 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결국 나의 미래와 마주하게 된다.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의 역량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지금 나는 내 가능성을 충분히 쓰고 있는지.


아이들은 부모를 가장 많이 닮는다.

부모의 가치관, 행동, 선택하는 방식,

불확실성 앞에서의 태도까지.


그리고 아이들은 커갈수록

부모의 선택과 그 결과를 더 많이 보고 자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가는 일과

나 자신의 미래를 그리는 일은

서로 다른 두 개의 흐름이 아니라

한 줄기 물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


40대 중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


숙련되고 인정받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계속 이 일을 해도 괜찮은지 스스로 묻게 되고,

마음은 깊은 곳에서는

'지금 아니면 언제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라는

조용한 두려움도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이전의 삶은 연구에 불과하며, 진짜 삶은 40 이후 시작된다'

는 칼 융의 말에 맞장구를 치게 된다.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할 때마다

내가 흔들리는 이유.

바로 이 문장이 짚어주었다.

나는 지금,

삶의 연구 단계를 지나

'진짜 내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한 것 같다.


그래서 흔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방황이 아니라 개편이다.

아이들의 인생을 위해,

그리고 나의 인생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지,

어떤 어른으로써 아이들 옆에 설 것인지,


이 질문들 앞에 서야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인생의 오후는 인생의 오전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


융의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니

정말 내가 인생의 오후까지 온 것을 실감한다.

이 나이의 흔들림들은

오전에 쓰던 방식을 내려놓고 오후의 삶을 다시 설계하라는 삶의 요구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흔들리는 나 자신이

예전 같았으면 불안했겠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흔들린다는 건

내가 아직 선택할 수 있고,

아직 바꿀 수 있고,

아직 나의 다음 장면을 직접 그릴 수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조금은 용감하게, 마음껏 흔들려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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