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표정은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아홉살, 구구단 외우기

by 조자연

나는 불편한 감정은

모른 척하는 아이였다.


그게 나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두려워서.
불안해서.


그 감정을 마주하면
내가 감당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표정을 뚫어지게 쳐다보지도 않았고,
기분을 파악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알아도 모르는 척했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내 자리를 조용히 지키기 위한,

아주 오래된 버릇.


엄마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불쑥 지나가는 찡그림,
말없이 무거워지는 공기.


나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읽을 수 있었지만,

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암기에 약한 아이였다.

구구단을 못 외웠다.
아니, 도통 외워지질 않았다.


우리 집 골목 건너편에 사는 그 친구는
벌써 구구단을 줄줄 외웠다.


엄마는 그 친구에게
“자연이한테 구구단 외우는 것 좀 알려줘”

하고 부탁했다.


나는 그 친구랑 함께
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구구단을 외웠다.


‘사삼십이’, ‘오육삼십’
입에 붙지 않는 숫자들이
뛰는 발걸음에 섞여 흩어졌다.


그 시절, 엄마는 늘 바빴다.


가게를 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하루 종일 전쟁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나를 보며
엄마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 표정이
너무 선명해서
지금도 기억난다.


그땐 엄마가 나에게 실망한 거라 생각했다.


나는 ‘잘하지 못하는 아이’였고,
엄마는 그런 나 때문에 속상해하는 거라 믿었다.


그래서 괜히 더 창피했고,
그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찡그림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내가 장사하느라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 써서 그런가.”
“내가 못 배워서, 우리 애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
“우리 딸도 나처럼 살면 어쩌지.”


그 모든 걱정은,
나에 대한 걱정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엄마 자신의 한계에 대한 슬픔이었다.


엄마는
자기 삶보다 더 나은 길을
딸에게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마음이
내가 못 외운 구구단 앞에서
표정으로 번졌던 거다.


나는 그 표정을
너무 오랫동안 오해한 채 살아왔다.


이제는 안다.


엄마의 근심 어린 표정은
내가 아니라
엄마를 향한 마음이었다는 걸.


그 표정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싶다.




그날의 찡그림은,
딸을 향한 게 아니라
더 나은 길을 건네주지 못한
엄마 자신의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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