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한 번씩 생각해 본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는지.
이런 질문은
신기하게도 마음이 비교적 괜찮을 때,
기분이 꽤 좋을 때 문득 고개를 들고 찾아온다.
기분이 나쁠 땐, 그 질문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살기 바쁘고, 버티기 힘들고,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조차 느낄 겨를이 없다.
그래서,
가장 좋았던 때를 묻는 지금이,
결국 가장 좋은 때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뭔가 늘 불안했던 것 같다.
세상이 무서웠던 나는,
부끄럼이 많은 작고 조심스러운 아이였다.
4학년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니 칭찬을 받았고,
엄마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 뿌듯한 눈빛을 보며,
나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늘 고생했으니까.
내가 괜찮은 아이가 되어서,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 느꼈다.
공부를 하면,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구나.
그런 내가 되면, 불안한 마음도 조금은 잠잠해졌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늘 필요했던 아이였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받기 위해, 괜찮은 아이가 되기 위해,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애쓰고, 조금 더 웃는 법을 배웠다.
20대엔
낯선 서울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나 자신이 주는 조용한 압박감 속에서
기댈 곳 없이 버티던 시기.
30대엔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았다.
그 사이에 직장과 가정이라는 제도 속에서
내가 어떤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으로 마주했다.
나는 나만의 기준과 리듬이 분명한 사람이며,
누군가와 계속해서 맞춰나가는 일에 쉽게 소진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누구나 겪을 수는 있지만
모두가 겪지는 않는 일들을 지나며,
사랑과 상실, 책임과 외로움을 모두 배웠다.
그 후 2년,
나의 마음을 대신해서 아파했을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건 어떤 의미에선
인생에서 가장 깊은 바닥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의 상실과
아무리 울어도 빠지지 않는 깊은 구멍.
그로부터 또 2년이 지났다.
이상하게,
올해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충분하다."
"이제는 나를 드러내도 괜찮다."
그전까지는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내가 뭘 안다고.'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불완전한 내가,
어떻게 세상 앞에 나설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아는 것이,
심지어 내가 나를 보는 것도 부끄럽고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제는 괜찮다"는 느낌이 찾아왔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실패와 노력, 슬픔과 회복이
이제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살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지금이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왜냐하면 이제야,
나는 나와 잘 지내게 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