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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쌤 Sep 06. 2018

호남여행-군산

퇴사 후 여행

벌써 한 여름이 되었다.

처 할머니댁 방문으로

충청도 끝자락까지 내려온 마당에

우리 부부는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차몰고 호남 곳곳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부산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일해온 나는

사실 남도땅을 제대로 여행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대학시절 무전여행으로 수원에서 광주까지 걸어갔을 때,

아니면 당일치기 출장으로 전주, 광주, 목포 등지를

각각 찍고 왔던 경험 정도가 전부다.


좀 여유롭게 돌아보고 싶었다.

어찌보면 팍팍한 서울살이하는 부산출신 회사원에겐...

남도의 들판과 바다를 여유있게 여행을 하는 것이,

비행기타고 일본 중국 여행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낯설지만 친근한 풍경
 

여행지를 정할 때는 항상...

'여행의 이유', 그러니까

"내가 왜 거길 가고 싶은가?" 를 먼저 생각해본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군산을 먼저 찾은 이유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가 여기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인생영화가 하나쯤 있다면,

나는 단연 8월의 크리스마스를 꼽는다.

'이어지지 못한 인연, 말하지 못한 사연'이

너무나 가슴 아리지만,

그 이야기의 전개는 또 담담해서 좋다.


나는 영화속 장면을 떠올리며,

초원 사진관 앞을 한참 서성이다가

미닫이문을 또 몇 번이나 드르륵거리며

꼼꼼히 건물 안팎을 살펴보고

주인공처럼 사진찍기도 해가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 초원사진관

그리고,

시멘트가 부식되어 '까끌까끌한' 모래가 만져지는

궁궐처럼 높다란 담장 속에 숨겨진

일제강점기 목조 건물도 돌아보았다.

이런 일제시대 적산가옥들은,

어릴 적 부산의 오래된 동네에서도 가끔 보던 기억이 있어

나에게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군산 히로쓰가옥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에서,

영화 속에서 봤던 친근한 풍경이 보이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다만...

여기서 이렇게 좋은 집에서 일본인 자산가는 떵떵거리며 살았고,

식민지의 조선인들은 수탈에 허덕이며 살았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억울한 사연이 많은 고장


군산항 부근으로 이동해서는

근대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부둣가에 있는 근대건축물들을 둘러보았다.

통합권 한장을 사면, 박물관과 여러 건물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도록

관광객을 잘 배려해 놓았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둘러보는 동안

일제 수탈의 아픈 흔적과

그 속에서도 살기 위해 뼈가 부서져라 일하던

사람들의 '고됨'이 깊이 느껴졌다.


일년 내내 고생해서 농사를 지어 놓으면,

정작 일본인 대지주에게 다 빼앗기고,

배고픈 나는 또, 손수 농사 지은 피같은 쌀을

군산항까지 등짐지어다주고 품삯으로 연명했다하니

얼마나 피눈물 맺히는 삶이었겠는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이 곳 군산은 최근에도

대형 조선소가 문을 닫고,

외국계 자동차회사가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멀쩡한 직원들을 내보내, 또 한번 아픔을 겪고 있다.


IMF이전, 대학생 시절...

대우자동차 군산공장을 소개하는 광고를 보며,

가슴 뿌듯해 했던 기억이 새삼 무상하였다.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이성당'에 앉아

팥빙수로 더위를 달래면서,

아이러니하다

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일제의 잔재,

적산가옥이 친근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수탈을 일쌈던 이들에 의해 전해진,

단팥빵이며 사라다빵, 팥빙수가

이제는 이 고장의 명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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