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심긴 씨앗은 거짓 없이 뿌리내려 그에 맞는 싹을 틔우는 법이다
꼬박 열달을 뱃속에 품은 내가 태어나기 직전 혹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엄마는 아빠 모르게 계모임 하나를 들었다고 했다. 엄마의 순서는 열 번째 즈음. 기다리던 차례가 돌아왔을 때 모든 곗돈을 든 계주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아주 먼 어딘가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엄마는 떼였고 계주는 가로챘다.
조금 더 괜찮은 것보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들을 골랐을 것이고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가성비를 따져가며 평소보다 시간을 투자해 한 푼 두 푼 쪼개고 여기저기서 조금씩 아껴가며 모은 천만 원과 함께 증발한 것이다. 그 모든 행위가 집약된 돈이 하루아침 사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당시 썩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우리 집에서 그 곗돈 천만 원은 단지 숫자가 아닌 차곡차곡 쌓아온 엄마의 뿌듯함이자 희망이자 그간 버터 낸 인고의 시간이자 관계의 믿음이었다.
덤덤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는 엄마에게 슬프지 않았냐고, 화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당시엔 혼자 많이도 울었고 도망간 계주를 찾아 이곳저곳을 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는 도중에 알게 된 것은 그 계주의 사탕 발린 꼬임에 넘어간 사람은 엄마뿐 아니라 여럿이었고 오랜 시간 속에서 당시의 충격이 건조해져 갈 때쯤 우연히 계주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트럭 하나로 길거리에서 속옷을 팔며 심지어 숙식마저도 그 좁디 좁은 곳에서 모두 해결하는, 말 그대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마치 꺼져가는 조명에 달라붙어 겨우 희망을 붙드는 하루살이처럼 삶과 생활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내 예상과 달리 엄마는 내게 사람과 세상에 속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다만 딸아, 그러니까 사람은 절대 죄짓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야 해. 스스로 노력해서 뿌린 씨앗은 거짓말을 안 해."
라고 하셨다.
넓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끄떡하지 않는 것, 내 욕심으로만 가득 채우며 이기적으로 사는 것, 도덕적인 선을 넘어 이익을 취하려는 것,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 정당한 노력 없이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 잘못된 일을 하고도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버리는 것, 사람보다 돈을 앞 세우는 것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안다.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돈이 최고라고 당당히 내뱉고 세상은 끊임없이 돈 앞에 굴복할 일들을 쏟아내며 마치 그 앞에서 비굴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남들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를 속여 어떠한 대가 없이 얻어낸 아니 훔쳐 달아난 그 돈은 정작 아무런 힘이 없었다.
자신이 심은 씨앗들은 거짓 없이 뿌리내려 어떻게든 그에 맞는 싹을 틔우는 법이다. 장미 씨앗을 심은 데엔 장미가 날 테고 팥 씨앗을 심은 데엔 팥이 자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원리인 것이다. 당장 오늘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지 않더라도 언젠가 거두는 날이 올테니 그에 맞는 작은 씨앗을 좋은 땅에 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