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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자연 Jul 06. 2023

서른의 유월, 난마를 풉니다

너무도 많은 생을 집적하고 있는 이 난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한 사건이 아닌 삶 전체를 응축시켜 놓은 듯한 난마를 가만히 봅니다. 너무도 많은 생을 그 안에 집적하고 있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갈피를 잡아야 하며, 그 안에 품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난마: 어지럽게 얽힌 삼실의 가닥이라는 뜻으로, 갈피를 잡기 어렵게 뒤얽힌 일이나 세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모든 것이 촘촘하고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시공간과 그 속의 존재, 상황과 여러 파편들 가운데 엉키고 설킨 그 사이를 지나고 있어요. 섣불리 당기거나 인내하지 못해 가위로 단숨에 싹둑 끊어내 버리고는 모른 체 뒤돌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이내 꼬인 줄을 찬찬히 훑고는 찾아요. 푸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그 한 가닥, 난마의 처음이자 어떠한 동요에도 꿈쩍하지 않을 사건의 밑바닥에 있을 그 가닥을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시선과 관점입니다. 난마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끝없는 씨름의 현장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가의 문제요.



한순간의 손쉬운 끊음을 상상하며 가위에만 시선이 향해 있는지,

어떻게든 그 한 가닥에 시선을 잃지 않으려 절박하게 애쓰고 있는지,

어쩌면 그 끈이 영영 내가 풀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며 자포자기하며 멍하니 있는지,

벌어진 상황에 화가 나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지,

해야 하는 일임을 알지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회피하고 있는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분명한 '나의 난마'임을 잊지 않고 있는지.



어지럽게 꼬여 있는 다른 끈들을 보면 더욱 헤맬 뿐입니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이 한 번의 실마리로 풀어지는 그 순간, 단 한 번이 올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결국 그것 아닌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하기에 끊임없이 틈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난마가 풀어지는 건 놀랍게도 한순간이에요.

그것이 풀리고 난 후엔 어떻게 풀어낸 것인지 모를 거예요.

풀어낸 당사자조차 그 방법을 알기란 쉽지 않아요.

어쩌면 손은 알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요.

풀어보면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 엉켜있던 수많은 가닥이 한 개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걸요.



서른의 유월은 끊어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여 작은 틈을 만들어 내며 푸는 과정의 어느 지점에 홀로 서 있다는 걸 문득 느껴요. 단숨에 끊어내고는 뒤돌아 버리고 싶은 그 순간순간의 마음을 꾹 누릅니다. 엉킨 끈들 사이에 그 한 가닥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일이 어쩔 땐 미련하게 느껴지도 합니다.


설상 외부의 힘으로 끊어낸다 해도 절대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일임을 어렴풋이 압니다.


난마를 풀며 난마 너머의 삶을 관통하는 진실이 담겨 있기 마련이니까요. 끊임없이 머무르지 않고, 끝까지 미혹되지 않아야겠지요. 이 와중에 갈피를 잡는 일은 그저 연속성을 발휘하는 것뿐입니다.


하나의 귀착점에 도달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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