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10월 - 바람맞기 좋은 날

숨을 쉬는 것에 대하여

by 한자연


홍대의 카페를 거진 다 둘러봤을 즈음부터 이태원으로 나는 눈을 돌렸다. 작은 샛길과 급경사의 언덕들이 얽혀있는 골목을 지나면 나지막한 건물들이 대로변으로 줄지어 서있는 한낮의 이태원이란 여유라는 말에 착 붙어버린 풍경이었다. 날이 좋아서 해밀턴 호텔 앞 큰 거리부터 구석진 곳의 작은 가게들까지 돌아다니며 드로잉을 했던 날이었다. 그렇게 이태원을 한 번 훑고 나니 그제야 나는 한국 속의 외국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영국여행을 다녀온 뒤로 타국 문화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던 내게 그곳은 신기한 것들이 줄지어있는 놀이터와 다름이 없었달까. 흔하게 볼 수 없는 소품들과 가구들, 그리고 왠지 모를 정겨움과 따뜻함이 풍기는 골목은 나를 한동안 그곳에 붙잡아두기에 충분했다. 참, 그래서 펭귄은 왜 그렸을까?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그날 함께 간 친구가 펭귄을 좋아해서 그려봤던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그림이 기억보다 무겁게 남기도 한다.



나의 드로잉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16년도와 17년도에 이들은 팔다리가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것이 폭력적인 이미지로 비쳤고 신체의 소실보다는 그들의 표정을 통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들은 한 사람이라 칭하지도 칭할 수도 없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선으로부터 사고를 공유하며 서로이자 자신을 대변한다. 우리는 사회를 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속에 감춰두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사회라는 무형의 틀 안에서 우리는 자신보다 타인의 입장을 우선시해야만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지하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그 형태를 보존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숨겨둔 말과 이야기가 많다. 아마 그것이 올바르지 않기에,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임이 명백하기에. 그래서 이들에게 청한다. 나,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어달라고. 상념의 호소는 비열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자신이 하나의 개체로서 그 형태를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비겁한 소음이 그림자로서 불멸하기에 우리는 빛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는 우리의 하루에 온종일 머무른다. 출근길 커피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직장인들,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들고 흡연하는 사람들 등, 모두가 이 볶은 콩을 우려낸 차를 손에 들고 산다. 다른 음료나 음식에 비해 그 호불호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커피. 그 자체에 대한 기호보다는 다른 요소들이 중요해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커피를 동반한 소통과 휴식을 즐긴다.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커피. 세 단어는 함께 있을 때 제법 편안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지도에 나온 인테리어를 보며 그날 가볼 카페를 고르곤 했다. 그런데 위 그림은 빽다방 영수증이다. 그곳의 인테리어는 사실 인테리어라고 하기에 조금 민망한 수준의 미감을 갖고 있었다. 덕지덕지 붙은 이벤트 이미지 배너와 쿠폰 안내 포스터, 화려하게 돌아가는 디지털 화면의 메뉴판은 그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럼에도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내 영수증에 가장 많이 남은 카페는 그런 애매한 공간의 것들이 많다. 언젠가 5천 원이 넘는 커피도 서슴없이 마시러 갈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들이킨 커피의 말라 붙은 자국을 그렸다.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다가 환승역인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을 타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 그날따라 유난히 커피를 많이 마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메스꺼웠다. 단지 전날 밤을 새우며 마신 카페인 때문이라고 가볍게 넘기려 했으나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날의 작업은 미루기로 하고 자주 들르던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늘 먹던 라떼 대신 페퍼민트를 시켰고 영수증들을 꺼내 드로잉을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그날의 감각은 나를 둘러싼 모든 공기를 낯설게 하기에 충분했고 어째선지 시간이 지나도 떨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 여행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털어 전동 킥보드를 사게 됐다. 그때는 지금처럼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가 흔하지 않았기에 나무박스에 포장되어 대양을 건너온 그 물건을 과 동기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뜯던 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매일 충전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긴 했지만 언제든 답답한 감각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해소할 수 있었다. 마포에서 관악까지 타고 간 날도 적지 않았으니까. 속된 말로 뽕은 뽑은 셈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터인데. 말 그대로 바람을 맞는다는 것, 억지로 숨이 쉬어지는 그 생경한 감각이 결국에는 부모님의 걱정 가득한 눈초리를 뒤로 한 채 시동을 걸어야 하는, 엔진이 달린 오토바이 위로 나를 인도하고 말았다.



제인에는 늘 화병에 꽃이 있었다. 조화였는지 생화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무렵부터 나는 집에 종종 꽃을 사가곤 했다. 때로는 그날의 밥값보다 무거운 지출이 되곤 했지만 그날만큼은 귀갓길이 경쾌했다. 빠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연한 세상에 꽃꽂이는 비효율의 집약체가 될지도 모른다. 꽃은 사는 순간부터 시들고 병의 물은 매일 갈아주어야 하며 향기가 탈취제만큼 강하지도 않다. 단지 꽃이라는 이유 하나가 그 행위의 정당성을 미약하게나마 지니게 했다. 당시에 버려진 꽃다발을 몇 번 주워서 그린적이 있었다. 그들은 쓸모가 있었으나 찰나의 여운을 남기고 쓰레기통으로 버려졌을 테다. 나는 그것이 아쉬워 그들을 물이 없는 병에 꼽아 며칠을 두고 보았다. 이미 말라버린 잎은 담배의 그것보다 빠르게 타버릴 듯한 위태로운 무게를 지녔고 나는 그 아슬함이 좋았다. 그리고 비로소 생화를 사 오는 것이 꽤나 합리적인 행위가 됐다. 이미 한 번 버려진 것들이 다시 쓰이는 나의 방에서 화병의 꽃이란 아직 제 삶을 다하지 않은, 숨을 쉬는 유일한 존재로 나의 매일을 달랬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