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11월 - 사랑을 드립니다

허기를 채우는 방법들

by 한자연

‘사랑을 드립니다’ 광고에 나왔던 문구였던가. 나는 그것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적당한 패키징으로 건네는 명절 선물세트 같은, 본질보다 그를 둘러싼 완충제가 가득한 것과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된 사랑. ‘드린다’라는 표현은 수신인의 의사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사람 간의 관계에서 확고히 하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자신이 보낸 선물보다 작은 것이 돌아오거나 혹은 그 무엇도 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 사랑은 드리기보단 드러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보여준 사랑의 모양, 그것이 설사 상대에게 꼭 맞지 않는 형태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서로의 틈을 맞춰 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는 각자의 유연함의 정도가 다르기에,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빈 공간의 텐션을 풀고서 주저 없이 돌아서도 괜찮지 않을까.

한동안 나는 가츠동에 빠져 있었다. 언뜻 보면 돈가스와 계란을 올려 소스를 두른 덮밥의 형태이지만 모든 재료를 따로 집어 먹는 처음 보는 형태의 음식은 꽤나 새로웠다. 가츠동을 처음 먹던 날, 재료들을 열심히 비비고 있던 나를 보며 한참을 웃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당시의 나는 그랬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혼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고 어색하고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갑자기 마주한 자유와 독립에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이리저리 부대끼며 내가 모르던 세상에 대해 알아가기 바빴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츠동을 비벼 먹던 나는 이제 없지만 가끔씩 그때의 서툴고 어색한 숟가락질과 사람들의 비웃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갓 나온 가츠동 위에 올라간 계란처럼, 깨질 수 밖의 없는 순수함은 청춘의 시작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대학교 앞에는 수제 버거를 파는 곳이 많았다. 지금은 수제 버거가 많이 비싸졌지만 당시에는 만원이 넘지 않는 메뉴가 종종 있었고 나는 점심을 거른 날이면 수업을 마치고 수제버거집으로 향했다. 허기에 들어찬 육즙과 바삭한 빵은 그리 양이 많지 않은 식사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곤 했기에. 근처에 조각피자를 파는 가게도 자주 갔었는데 3천5백 원이면 해결되는 식사가 내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커피와 카페는 곧 죽어도 필요한 나는 식사의 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위가 줄어든 것일까, 지금은 식탐이 거의 없는 사람이 됐다. 밥보다는 그 이후에 해야 하는 일들과 그림에 신경이 쏠려있었다. 말 그대로 식사는 해치워야 하는 것이었고 라테의 우유가 약간의 빈 공간을 마무리하는 매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적당한 배부름이 좋다. 담배의 들숨을 위한 그 공백이 상쾌했다.

이러한 아프리카 전통부족의 문양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두, 세 장 정도 그린 것으로 기억한다. 뚜렷한 목적은 없었고 그저 그 문양이 주는 시각적인 자극이 좋아서 떠오르는 대로 점과 선을 그렸다. 어쩌다 보니 그것이 관습처럼 남아 종종 그림에서 점과 선의 반복이 등장하곤 한다. 일전에 한 번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줄무늬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분이 계셨다. 나는 대답을 머뭇거리다가 그저 의미 없는 낙서의 한 종류라고 답했다. 길어진 통화의 끝에는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낙서들이 달력이나 다이어리에 남는다. 그저 의미 없는 반복적이고 조잡한 점과 선의 집합은 누군가의 고민 상담이 되고 누군가의 그리움이며 누군가의 애틋함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의 그림에 등장하는 줄무늬는 여전히 무의미의 형상으로 두고 싶다. 때로는 의미가 없는 곳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기곤 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회전 초밥집에서 50 접시를 먹은 적이 있더랬다. 그 때문인지 식탐이란 것이 바닥난 나이지만 초밥만큼은 꽤나 설레는 메뉴로 남아있다. 나 또한 어릴 적에는 회전초밥 뷔페의 셰프들이 그다지 반기지 않는 손님이었다. 학생 기준 2만 3천 원 정도였던가. 나는 자리에 앉아 40 접시는 너끈히 먹고 일어났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 초밥집에서 외식을 했었는데 아마 그들만의 블랙리스트에 내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생이 된 나는 17킬로를 감량했고 더 이상 음식점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가 없었다. 모둠초밥 12피스도 겨우겨우 먹는 소식가가 되어버렸으니까. 어릴 때에는 연어와 새우, 그리고 참치만 고집하던 나는 양이 줄면서부터 어떤 종류의 합이 맛이 좋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다양한 종류를 조금씩 먹는 취미가 생겼다. 때문에 일본 여행에서는 늘 초밥집을 먼저 찾게 됐다.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고 질 좋은 초밥의 향연은 내가 일본에 가는 최우선의 목적이 되기 충분했다. 아직도 작년 도쿄역 앞에서 먹었던 감태가 말린 성게 알 초밥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은 여기서 그만 줄여야겠다. 쓰면 쓸수록 비릿한 감칠맛이 허구로 입안에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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