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3월 - 파란 대문집

다시 오지 않을, 보고 싶은 얼굴들을 그리며

by 한자연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학교 후배들과 처음으로 떠난 여행. 어설픈 무장으로 오른 한라산의 설경이 잊히지 않는다. 등산 내내 눈이 왔고 서로의 모자에 쌓인 눈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안개와 눈으로 흐릿해진 시야에 마른풀과 가지들이 이따금 고개를 내밀었고 그 군락의 아름다움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당시에 찍은 설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름의 냄새가 났다. 분명 손을 불어가며 남긴 사진들이었지만 보정을 거치니 뜨거운 해변으로 한 계절을 건너뛰었다. 여름의 파도를 기다리는 삶은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서울대입구역에는 대형 카페들이 많았다. 특히 시험기간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함께 공부를 하는 학교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어디를 가더라도 꼭 친구가 한 두 명쯤은 있었다. 웨이팅을 피해 방황하며 자리가 남은 음식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종종 책가방을 메고 사거리를 배회하곤 했다. 보통은 흡연실이 있는 카페는 심야를 제외하고 늘 사람이 가득했다. 카페들의 유동인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는 웬만하면 바로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가끔은 그 공기가 그립다. 이따금 커피와 담배를 만끽하기도 하며 한 책상에 모여 무언가에 몰두하던 우리는 이제 각자의 생계를 위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아 있다. 다시 오지 않을, 보고 싶은 얼굴들을 그리며. 그리고 그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며.


어릴 적부터 나의 집은 문에 색이 있었으면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리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혼자 살게 된 주택. 고양이가 뛰놀던 지붕도 나름 운치 있었다. 천막에 모래주머니가 올려진 것을 지붕이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집에 나는 우체통을 칠하고 번지수를 나무로 만들어 붙였다. 벽돌을 모아 와서 담벼락에 화단을 만들고 중학교 때 만든 석고상을 담 위에 실리콘으로 고정했다. 친구들은 이 요상한 자취방을 좋아했다. 나의 '파란 대문집'은 동네 어르신들도 종종 구경하고 가는 작은 랜드마크가 됐다. 하루는 배달원이 치킨을 건네면서 주소가 게임 퀘스트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셨다. 이 집을 떠날 때에 동네에 빨간 우체통과 파란 대문을 칠한 집이 하나 더 생겼다. 락카 스프레이로 마스킹을 하지 않고 뿌린 것을 보니 아마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의 멋진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형태를 찾아가는 것보다는 형태를 깎아 간다는 것에 가깝다. 이미 존재하는 모양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붓질을 통해 가상의 큐브를 조각하고 있다.

오래전에 본 책이지만 지금도 가끔 해답을 찾으려 펼치곤 하는 책. 보이는 것과 보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지속된다.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가 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기록의 주 수단으로 사용하게 됐다. 일기를 볼 때 우리는 형상을 떠올리며 가상의 풍경을 응시한다. 하지만 휴대전화 속 너무도 날카롭기까지 한 선명하게 남은 사진들은 그러한 응시를 생략하고 말았다. 회상은 디지털 이미지의 범람으로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보이는 것이 아닌 보는 것, 그 찰나에 걸치는 버퍼링의 중량을 늘리는 것이 나의 그림이기를 바란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