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이탈을 위한 섭취들
학교에서 작업하다가 영화관으로 달려간 날. 친구와 나는 판화실에서 끝나지 않는 과제를 이어가던 중 분노의 질주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미대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야작'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 야작은 야간작업의 줄임말로 밤을 새워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미대생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당연하게도 새벽 시간이 되면 모두가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속된 말로 나사 하나가 빠진 상태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분노의 질주 예고편은 굉장한 기폭제가 되었다. 이 반복적인 작업의 굴레를 벗어나 모든 것이 파괴되는, 그리고 그 파편을 돌파하는 자동차들의 질주는 실기실에 남은 우리를 영화관으로 순식간에 옮겨 뒀다. 사실 분노의 질주는 속편이 늘어날수록 영화의 질은 현저히 떨어졌다. 브라질 에피소드가 아마 그 마지막 정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중간에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잠수함에서 주인공들이 탈출하는 장면이 나왔다.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의 등장에 나는 아직 꿈속에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착각마저 들기도 했다. 이 화려했던 자동차 액션 영화는 최근 에피소드에서 이제 산을 넘어 우주로 향했다. 새롭고 도발적인 시도가 늘 성공적인 발전을 만들 수는 없나 보다.
카페에 들어서자 좌석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가득한 화분을 볼 수 있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함께한 후배와 자리를 잡기 전에 카페를 서성이며 그곳에 가득한 풀내음과 꽃향을 만끽했다. 자리에 앉으니 테이블마다 작은 병에 담긴 꽃들을 볼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 펜을 집었다. 가끔은 그냥 예쁜 꽃이나 그리는 별 야망 없는 작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붓에 담는 시간을 그려봤으나 눈앞에 쌓인 영수증을 보며 이내 그것이 꿈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한 나였다.
서울대입구에는 오래된 카페가 하나 있다.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 맛있는 커피를 찾던 나는 티라노 커피라는 재미난 이름의 간판을 보고 문을 열게 됐다. 입구에는 석기시대 초콜릿이 있었고 카페 안에는 로스팅한 원두의 냄새가 가득했다. 난생처음 보는 메뉴들이 많았고 나는 이것저것 시켜보면서 어느새 단골손님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사장님과 직원분은 나를 같은 인사로 반긴다. 다만 '오랜만에 오셨네요.'라는 따뜻한 두 마디가 더 늘었다. 티라노를 들락거린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게는 그때의 시간에 멈춰있다. 카페의 문을 열면 그때의 내가 앉아있다. 낡은 오토바이에서 내리던 청년은 이제 없지만 사장님의 회갈색 미니쿠퍼는 여전히 가게를 지키고 있다.
내가 밀었다
자라는 검은 이야기를 날카로운 고함으로
매끈하게도 밀었다
당신이 따가울까 봐
나의 얼굴을 가볍게 뭉갰다
수염이 많이 자랐다
예쁜 투정 기다리다가
얼굴에 휘젓는 어색한 손짓의 반복
-면도-
환타는 주황색이다.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한 이 음료의 색은 마실 때마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느낌을 주었다. 원래의 나는 사이다를 좋아했다. 상쾌한 것은 투명한 색으로부터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부터 나는 이 인위적인 주황빛을 찾게 됐다. 반복되는 하루들은 흑백이었고 해가 뜨고 지는 명암의 챗바퀴를 돌다가 주황색 음료를 마셨다. 잠깐의 이탈에서 나는 쾌락의 반절 정도 되는 짜릿함을 느끼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나는 종종 환타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