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의 방들을 찾아 떠나는 산책
어떤 도시에 머물다 떠날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슬슬 마지막 산책을 나선다. 그곳을 다니면서 느낌이 제일 좋았던 동네로 다시 이 도시에 왔을 때 묵을 곳을 찾으러 간다. 이 특별한 산책의 시간이 나는 새로운 도시에 막 도착한 것만큼이나 설렌다.
숙소 예약은 항상 예상을 빗나간다. 고급호텔을 가는 게 아니니 호텔 예약 플랫폼에서 아무리 잘 살펴보고 한다고 해도 막상 가보면 뭔가 부족할 때가 있다. 사진상으로 깨끗하고 리뷰도 괜찮았는데 화장실 물이 새서 방을 바꾼 적도(컴플레인을 했지만 빈 방이 없어 기다려야 했다), 뷰 때문에 예약했는데 다른 건물로 막힌 방을 줘서 황당한 경우도, 여행자 거리의 소음이 밤새 들려 밤을 꼬박 새운 적도, 바다까지 600미터쯤이라고 소개되어 갔는데 막상 뜨거운 태양 아래 걸어보니 도보로는 힘든 곳도 있었다. 한낮의 기온이 40도 가까이 되는 미얀마 바간에서는 에어컨이 고장 나 찜통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마음에 딱 드는 숙소도 만나지만 아쉬울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여행 경비를 아끼려다 보니 대부분은 환불 불가 방이라서 물릴 수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 그래서 미래의 숙소 찾기 산책이 시작되었나 보다. 다시 이 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면서 기약도 없이 다음에 묵을 멋진 방을 탐색하러 나선다.
흐엉 강이 남북을 가르며 흐르는 베트남 후에에서는 여행자들이 보통 머무는 남쪽에 숙소를 잡고는 했는데 이른 아침 왕궁이 있는 강 북쪽을 다녀보니 욕심이 났다. 이 근처라면 매일 아침 여행자들이 몰려들기 전 호젓하게 인적 드문 해자를 따라 산책할 수 있겠다 싶었다. 왕궁 근처 숙소는 없을까? 성벽이 바라보이는 카페에 앉아 우리는 회의를 열었다. 며칠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보지 못한 게 왕궁과 가까워 숙박업 허가가 안 나는 건가? 그래도 혹시 한번 가볼까? 우리는 별 기대 없이 왕궁 근처 골목들을 천천히 걸었다. 성문 근처에서 호텔 하나를 봤지만 문을 닫아 진짜 그 이유인가 보라고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운명처럼 홈스테이 하나를 발견했다. 오토바이만 간혹 지나다니는 조용한 골목 안. 몇 개의 방이 아담한 정원을 향해 나 있고 한 가족이 정원에 놓인 티테이블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분위기, 오래된 건물이지만 정성스레 보살핀 것이 느껴지는 집. 대문 바깥에서 안쪽을 엿보며 나는 언젠가 저 방에서 자고 일어나 새들이 명랑하게 지저귀는 정원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했다. 다음 후에의 숙소는 여기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집들 풍경이 너무나 근사한 도시 달랏에 간다면 무조건 ‘마을 뷰’ 숙소라야 한다. 다행히 시설은 좀 낡았어도 삼면으로 동네를 볼 수 있는 숙소를 찾았다. 해가 뜨고 질 때면 나는 매일 작은 발코니에 나가 집들이 고원의 투명한 빛에 물드는 풍경을 구경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하얀 건물에 시선이 갔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쪽 편 마을 풍경은 어떨까 궁금하던 참이었다.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저 건물에서라면 이쪽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일 것 같았다. 달랏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무작정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호텔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건물의 정체를 확인해야 했다. 천천히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그곳. 우리의 예상이 맞았다. 호텔이었다. 동쪽을 향해 낸 작은 베란다가 있으니 마을 경치를 감상하기에 그만이겠다. 게다가 호텔로 들어가는 골목 안 동네는 또 어찌나 한가롭고 정겨운지. 다음번 달랏 숙소가 정해졌다.
냐짱에서는 5층이었던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던 옛날식 호텔을 찜해 두었다. 이제는 현대식 고층 호텔들이 해변가를 다 차지했는데 큰길에서 살짝 들어온 위치에 미니 호텔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 옥상 방을 보자마자 나는 반해 버렸다. 바다가 정면으로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눈만 옆으로 돌리면 보이고, 방 앞에는 긴 의자가 놓인 꽤 넓은 야외 공간도 있다. 지금 그 방에는 어떤 여인이 머물고 있는데 이른 아침이면 밖으로 나와 요가를 한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국수와 커피와 과일을 시켜 천천히 아침을 즐긴다. 수영복이 빨랫줄에 걸려 있지만 바다에는 잘 나가지 않는 것 같다. 내 방에 들어오면 그쪽부터 살펴보는데 여자는 늘 거기 그대로 있다. 어디를 굳이 가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다는 듯 말이다. 언제나 맨발로 방과 그 앞을 자유롭게 오가며 마치 나를 약 올리듯 자리를 떠나지 않고 냐짱의 시간을 한껏 즐긴다.
그렇게 그녀를 부러워하던 나는 다음 날 그 호텔로 달려갔다. 며칠 뒤에라도 혹시 저 방이 빈다면 냐짱의 일정을 늘려 하루라고 묵을 작정이었다. 호텔의 이름은 '바다로 가는 길'. 이름까지 멋지니 나의 부러움은 또 더 커졌다. 리셉션에 그 방 상황을 물었더니 장기 투숙객인 그녀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단다. 나는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냐짱에 오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까 생각했었는데 안 되겠다. 언제고 다시 냐짱에 와서 꼭 저 옥상에 머무르리라. 방 앞 긴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냐짱의 짙푸른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리라. 층층구름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행운의 그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
뀌년에서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중에 다음번 숙소가 정해졌다. 수평선을 향해 나갔다가 해변으로 돌아올 때마다 해변 숙소들을 매와 같은 눈으로 살폈다. 그때 머물고 있던 숙소가 바다와 약간 멀었는데 파도가 수시로 변하니 역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라야겠다 싶었다. 그래야 해수욕을 할지 다른 일정을 계획할지 결정하기 쉬우니 말이다. 해변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이 제일 좋지만 가격이 비싼 곳은 부담스러워 제외다. 내가 찾은 곳은 해변에서 큰길 하나 건너에 있었다. 높은 층에서 해변이 보일 것 같았다. 나는 뀌년을 떠나기 전날 그 호텔을 찾아갔다. 리셉션에 우선 가격부터 체크했다. 적당한 가격이었다. 방을 볼 수 있겠냐고 청하니 흔쾌히 열쇠를 들고 앞장서며 따라오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 하나 놓을 작은 발코니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오후 세 시경이었는데 햇빛이 방 안에 넘실거렸다.
'여기다!'
언젠가 다시 뀌년에 왔을 때 묵을 곳이 정해진 순간이다. 친절한 직원은 방을 마음에 들어 하는 내게 이런저런 숙소 자랑을 들려주고 나는 내가 그리던 숙소를 찾아낸 기쁨과 흥분으로 금방이라도 곧 다시 올 것처럼 신이 나 괜히 이것저것 묻는다. 그리고 여러 방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방의 호수를 메모해 둔다.
나는 이 시간들이 좋다. 다음번 오고 싶은 숙소를 찾아내 하루에 얼마인지 묻고 방을 보여달라고 청해 보는 시간. 친절한 주인이 안내해 주는 방을 둘러보며 마치 내일이라도 올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거기에 묵는 나를 상상해 보는 시간. 함께 떠나온 친구에게 “다음에 오면 우리 여기에서 묵자”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을, 다시 함께 올 수 있다는 조금 막연한 희망을 나는 사랑한다.
하지만 현실은 매정하다. 이렇게 여기저기에 멋진 숙소를 많이 봐두었는데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나만의 조건들을 충족시킨 미래의 숙소들을 이리 많이 찾아 두었는데 이제 여행이 힘들어졌다. 어느새 나이는 50대 중반, 부모님은 자주 편찮으시고 먹고사는 일은 더 바쁘고 어려워졌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늘 그랬듯이 앞으로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나는 그래서 여전히 다음 숙소를 열심히 찾는다. 아담하지만 제법 큰 창이 있어 답답하지 않은 방. 오래되어 낡은 공간이지만 정갈한 느낌의 방. 느긋한 주인과 아침 인사 나누며 편안하게 드나드는 방. 의자 하나 둘 수 있는 작은 발코니가 딸린 방... 그 방들이 있는 한 나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꼭 다시 갈게. 미래의 나의 방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