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란따에서

태국 남부 섬 여행 # 01

by Jean


방콕 수완나품에 내리는 시간은 새벽 한 시경.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고 6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가 국내선 첫 비행기로 내처 끄라비 타운까지 가려한다. 다음날 6시 반 비행기니 8시면 끄라비 공항에 도착이다. 거기서 란따 섬까지는 다시 2시간 반. 끄라비 버스 터미널에서 꼬란따('꼬'는 '섬'이라는 뜻)로 가는 미니밴이 시간마다 있다.


국내선은 저가항공으로 끊었다. 짐이 없기도 하고 비용을 아끼고 싶기도 해서 수하물은 따로 신청 안 했다. 문제는 바디 보드인데 기내 사이즈를 조금 넘어서 어떨지 운에 맡겨본다. 결과는 무려 1300밧 지출. 정든 보드를 방콕 공항에 버릴 수도 없고 나는 죄 없는 카운터 직원을 원망하며 지갑을 열었다. 수하물을 미리 사뒀으면 비용이 절반밖에 안 들었을 텐데 괜히 아껴보겠다고 하다가 큰코다쳤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아무튼 나의 보드는 나와 함께 끄라비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저 드넓은 안다만해에서 내 몸을 둥둥 띄워 지켜줄 보드가 있으니 어떤 파도도 무섭지 않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란따행 미니 밴이 페리에 오른다. 페리를 탄다는 건 곧 란따 섬이라는 얘기다. 페리 안에서 기사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숙소를 물어본다. 숙소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서다. 란따 안에 있는 그 많은 호텔 이름들을 외우는 게 기사 시험의 조건인가. 숙소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 거기요, 한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골목 안 작은 숙소였는데 문 앞에 척 내려주았다.


란따 섬의 여러 해변 중에서 내가 선택한 곳은 끌롱 다오(Khlog Dao). 해운대의 세배쯤 될까. 해변은 길고도 넓다. 물이 빠지면 모래보다 더 작은 입자의 부드러운 흙이 드러난다. 까슬까슬한 모래사장이 아닌 감촉이 고운 ‘흙사장’이다. 바닷물이 있는 곳까지 100미터도 넘는 백사장. 나는 짐을 던져두고 뛰었다. 란따 바다와 드디어 다시 만났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바다가 여기에 있다. 태양이 미세한 일렁임을 비춰 반짝여주지 않는다면 물이 아닌 무엇인가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잔잔한 바다. 인간의 마음이 파도치는 바다와 닮았다면 나는 여기 란따, 그중에서도 끌랑 다오 비치의 바다 같기를 소망한다. 흔들리고 일렁이고 떠밀려가는 것이 삶이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요동치지 않고 차분할 수 있는 마음. 나는 그 마음을 만나고 싶어 란따에 다시 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할 것 같은 평온한 파도 소리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 차르르르 차르르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풍경 소리가 바다에서 들려온다.



다음날 아침, 아직은 캄캄하지만 숙소를 나선다. 란따에 아침이 오는 모습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곧 해가 뜰 텐데 하얀 달이 바다 위에 선명하게 떠 있다. 달이 느긋한 걸까 해가 성급한 걸까. 빨리 세상을 보고 싶어 엄마 뱃속에서 일찍 나온 아가처럼 해가 서두른다.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백사장엔 썰물이지만 발가락 정도만큼 물이 고여 있어 하늘과, 아직 못 떠난 달과, 아침노을을 되비쳐준다. 그 반영들 때문에 란따의 바다는 더 신비롭다.


여명 속 네 마리 개가 모여 있더니 흩어진다. 하루 일정을 의논하고 헤어지는 것처럼. 허리까지 몸을 잠그고 짝을 지어 그물로 고기를 잡는 사람들도 슬슬 출근한다. 한 명이 그물 한쪽을 잡고 다른 한 명이 큰 원을 그리며 그물을 둘러친다. 아내가 그물을 잡고 있는 팀도 있고 수염이 하얀 아버지가 잡고 있는 팀도 있다. 낮은 바다에서 뭐가 잡히려나 싶은데 한참을 지켜보니 팔뚝만 한 고기를 그물에서 꺼낸다.


란따의 아침, 물 빠진 바다를 하염없이 느리게 느리게 걷는다. 어디를 딛여도 평평해 발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파도가 남긴 자국들이 보이지만 무늬일 뿐 굴곡이 없다. 바다 뒤쪽 낮은 봉우리에서 해가 떠올랐고, 달은 그 후에도 한참을 더 있다가 희미해졌다.





한낮의 해변에 파라솔 대여 같은 건 없다. 사람들은 뜨겁고 나른한 해변을 걷고 뛰고 비치볼 놀이를 하고 선탠을 하며 오전과 한낮을 보낸다.


어느 날은 해변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사람들. 나는 반환점에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물을 마시며 파랗게 웃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홀가분하게 뛴다. 살아있음을 만끽한다.


해변 달리기 대회 풍경


하릴없는 나는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 시간이나 기록한다. 정오를 막 지난 12시 15분, 오후 3시 39분, 저녁 7시 24분에 들리던 아득한 소리. 노래 같기도 기도 같기도 한 그 음들에 나의 소원을 슬며시 얹는다.


눈이 부셔 제대로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든데도 근사한 바닷빛과 태양빛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어 선글라스를 안 끼고 바라보는 오기를 부려보기도 한다. 까무룩 조는 일, 철썩 소리가 빠진 높낮이 없는 파도 소리를 듣는 일, 프리다이빙 흉내를 내며 자맥질을 해보는 일. 그런, 일 아닌 일들로 한낮의 시간을 보낸다.


무슬림인들이 많이 사는 란따 섬의 모스크




뭔가를 해도, 또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곳이지만 나는 4시면 어김없이 나의 보드와 함께 바다로 나간다. 하얀빛 웅덩이를 수평선에 만드는 태양을 향해 헤엄쳐 나간다. 그 빛 속에서 실컷 수영을 하고 나오면 물에 젖은 채 해피 아워 칵테일로 유혹하는 바에 앉는다. 거기 앉아 그날의 일몰을 기다린다. 철 지난 팝이 나오고 사진을 찍어달라면 백 밧이라고 농담을 하는 직원이 가져다주는 라임과 민트가 듬뿍 든 모히또 한 잔의 맛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천천히 음미하며 아껴 먹는 사이 해는 서서히 수평선으로 내려온다. 넓디넓은 백사장에 붉은 빛자국을 길게 늘어뜨린다. 란따의 태양은 그림자마저 붉다. 그 빛 아래에서 한 아이와 엄마가 오래 뛰어논다. 이 순간 물고기의 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삼백육십 도를 볼 수 있다는 물고기처럼 이 귀한 장면을 한꺼번에 보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 나는 토막토막 눈에 담아 머릿속으로 장면 장면들을 잇는다.





저녁이 왔다. 해변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 불이 켜졌다. 나무로 트리 모양을 만들고 안에 조명을 둔 특별한 트리가 반짝인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곳에서 보는 트리가 왠지 더 반갑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란따에 왔을 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바닷가 호텔은 연휴라 너무 비싸 길가 산이 보이는 그곳에 묵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트리 아래에 방 번호가 적힌 선물 주머니들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내 선물은 내가 한번도 사본 적 없는 알록달록한 시계였다. 하도 화려해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잘도 작동했다. 한국에 돌아오자 곧 멈췄지만 아직 간직하고 있다. 명랑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잠시 차 본다.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는 집 같은 숙소의 깜짝 크리스마스 이벤트 덕에 그해 크리스마스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크리스마스를 맞을 때마다 나를 다시 행복하게 한다. 시계가 아닌, 사라지지 않는 그날의 설레는 기분이 그들의 진짜 선물이었나 보다.



해변을 향한 식당들이 불을 밝히자 여행자들이 수영복을 벗고 저마다 멋을 내고 다시 해변에 어슬렁 등장한다.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불쇼를 한다고 써붙인 레스토랑에 들어갈까 말까 즐겁게 망설인다. 불이 들어오는 장난감 같은 걸 파는 장수들도 나왔다. 하늘 높이 던지고 돌리며 꼬마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완벽한 란따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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