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에서 주웠어. 이 사랑스러운 장면들을...

# 03

by Jean


<축 생일>.

김선우 시인의 시를 처음 읽는다.

시집보다 먼저 시인의 인터뷰를 읽었다.

엄마를 떠나보냈고

시인도 몸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쓴 시들이라고 했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부모님을 보면서

곧 올지도 모를 이별을 문득 상상해 보는 나이가

된 나는 요즘 그런 이야기들에 마음이 간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는지

어떻게 작별하는지 지혜를 구하고 싶은 걸까.

나는 얼른 시집을 펼쳤다.

엄마가 떠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

더 많아졌다고 인터뷰에서 시인이 말했었는데

시집 속에서 시인은 아픈 시간 속에서도

다정한 것들을, 사랑을, 인생의 비밀 같은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 들려주었다.

아렸다가 슬펐다가 흐뭇했다가 아팠다가

마음이 파도를 탔다.


그러다가 이 시를 만났다.

이 페이지에서 나는 잠시 쉬었다.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시인이 책날개를 접고 나비들 꽁무니를 따르는 이유'라는 시였다.




# 살구빛 오늘은


스포츠 용품 전문점에 들어선 두 사람

신발 매대에서 남자가 이 신발 저 신발 기웃거린다

티 안 나게 가격표를 보려 해도 결국 티가 난다

"저기...... 좀 싼 건 없습니까?"

난처해하는 점원

"우리 딸애가 첫 월급을 탔다고. 허. 애비 신발을 사 주겠다지만. 허허. 웬 신발이 죄다 이리 비싸지."

조용히 아버지 뒤에 서 있다가

남자가 가장 나중까지 매만진 신발을 챙겨 계산대로 가는

딸아이의 살굿빛 미소를 보았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


# 뛰뛰빵빠아아앙


강변 산책길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엄마, 꽉 잡아!"

비스듬한 길 초입에서 오십을 훌쩍 넘긴 듯한 남자가 다정하게 소리친다

휠체어에 앉은 자그마한 노모는 귀가 어두운 듯

아들 쪽으로 귀를 열고 옹알이하듯 입술을 오물거린다

아들이 단단히 잡고 있으니 등 뒤가 바닥이라는 듯

편안한 얼굴로 손잡이에 힘을 준다

꽉 잡으랬으니 잡아야지 아들 덜 힘들게

그런 마음이 곧장 읽히는 얼굴

"가자, 엄마! 뛰뛰빵빠아아앙!"

오, 오늘은 기분 좋은 날




시 속에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그중 두 가지다.

아마도 시인이 어디선가 목격한 장면들일 것이다.

그가 시로 옮겨준 이 사랑스러운 장면들.

시인이 따라가는 나비 꽁무니를

나도 한없이 행복하게 뒤따라갔다.


곧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날이다.

‘뛰뛰빵빠아아앙’ 하며

아버지의 휠체어를 힘껏 밀어 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크리스마스는 란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