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그래, 맞다.
그렇게 설명하는 게 제일 가깝겠다.
그 거리에서 그 나무를 찾으려면
브로콜리를 떠올리면 된다.
거리로 들어서면 아주 멀리에서도
눈에 꽉 차는 나무는,
아무렴 사랑스러운 브로콜리를 꼭 빼닮았다.
브로콜리를 향해 걸어가자. 점점 가까워질수록 바람에 흔들리는 무성한 잎들이 보인다. 끝이 길고 뾰족한 보리수나무의 잎사귀 수천 개, 수만 개가 저마다의 속도로 뒤집히며 햇살을 받으니 반짝임이 끊이지 않는다. 나무 아래에 서서 방향을 요리조리 바꾸며 사진을 찍어보지만 나무의 크나큰 품과 빛은 다 담기지 않는다.
몇 년 전 목적 없는 산책길에 봤던 이 보리수나무를 이렇게 금방 찾을 줄 몰랐다. 나무 아래 국숫집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나무 그늘이 짙어 눈을 크게 뜨고 봐야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국숫집. 내가 아유타야에 다시 온 건 이곳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사원들은 핑계고 말이다. 친구가 사원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이 집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
국수를 시키고 거리를 향해 앉는다. 처마 쪽으로 뻗은 보리수나무의 가지. 종처럼 생긴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면 마음에도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어디선가 뎅그랑 뎅그랑 풍경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주 작은 국수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보트 누들이다. 아구야, 이걸로 배가 차려면 몇 그릇을 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의 양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그럼 그렇지 한 그릇만 먹는 사람은 없다. 두 그릇, 세 그릇, 네 그릇... 젊은 남녀는 도합 여덟 그릇이나 해치우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일어선다. 다들 몇 그릇이나 먹을까 세어보는 재미에 옆테이블을 자꾸 힐끔거리게 된다. 나도 이 분위기에 힘입어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또 한 그릇, 또 한 그릇을 주문한다. 돼지고기를 먹었으니 이번엔 소고기로, 또 숙주와 바질도 달래서 한 그릇을 더 비운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이 앞에 있는데도 보리수나무가 다 가려주니 국숫집은 시원하기만 하다.
길가 쪽에서 국수를 말고 안쪽에는 손님용 테이블과 살림집이 있다. 뭘 물어보지를 못하는 성격인데 그 공간이 너무나 아늑하고 좋아서 번역기를 돌려 아주머니께 내밀어본다.
"이 나무는 몇 살인가요?
국수는 언제부터 파셨어요?"
환하게 웃으며 천천히 번역기에 대고 말씀을 해주시는 아주머니. 300년 된 나무라고, 대를 이어 국수를 팔고 있다고, 50년째라고 하며 다섯 손가락을 쫙 펴신다. 맛있다고 말씀드리니 캅쿤카, 두 손을 모으신다.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와 수줍은 미소가 참 아름답다.
10밧이라고 쓰인 오래전에 만들었을 낡은 플래카드가 가게 앞에서 휘날린다. 지금은 가격이 자그마치 두배로 올랐다. 그렇다고 놀라지 않아도 된다. 국숫값은 20밧, 920원 정도다. 나는 60밧을 치르고 국숫집을 나섰다. 보리수나무의 영에게 이 집과 국수맛을 언제까지나 지켜 달라고 빌면서.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잊지 못할 어느 골목 풍경, 유서 깊은 유적들, 또 때로 예술 작품들과 우연히 만난 좋은 사람들... 1350년부터 400여 년간 시암 왕국의 수도였던 아유타야에서는 300년 된 보리수나무 아래의 국숫집을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석양이 근사했던 차이와타나람 사원은 간발의 차이로 내 마음의 2위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