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그 겨울의 김치밥

by Jean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손잡이는 찌그러지고 뚜껑의 고무도 일부 녹아버린 낡은 냄비. 우리 집 역사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물 냄비가 엄마 집 싱크대 저 안쪽에서 나왔다.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흘러가버리는지. 그래, 무려 40여 년 전이다. 냄비는 그때부터 우리 집에 있었다. 나의 몸이 되고 마음이 된 '김치밥'이 아마도 오백 번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이 냄비에 담겼을 것이다.


갑작스레 내 앞에 나타난 냄비가 나를 태운다.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버스처럼 나를 싣고 겨울 어느 날의 그곳을 향해 날아간다.


알고파서점.


부모님이 가계를 위해 꾸렸던 열 평 남짓한 시골의 작은 서점. 아버지가 지은 어찌 보면 좀 웃긴 이름의 서점에서 우리 삼 남매는 자랐다. 고향에 가면 아직도 나는 동네 어른들한테 ‘알고파집 딸네미’로 불린다. 카페처럼 예쁘고 분위기 있는 지금의 동네서점들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얼른 지우시길. 좁은 공간에 소설책은 물론이고 참고서, 잡지, 만화책, 수험서적들이며 온갖 것들이 쌓여 있었다. 키가 작은 나는 자주 책 속에 파묻혔다. 책에 푹 빠졌다는 멋진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높이 쌓인 책들에 둘러 싸여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마치 책들이 나를 안아주고 지켜주는 것 같았다. 그곳은 어쩌면 내 생의 첫 번째 안식처였다.


학교가 파하면 언제나 서점에 들러 쭈쭈바 같은 주전부리를 사다 먹으며 책 위에 걸터앉아 만화책과 잡지들을 실컷 보곤 했다. 세상사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책장을 넘기며 깔깔깔 웃으면 되었던 시절. 생각해 보니 나의 유년 시절이 이렇게나 근사했다.


방학 동안에는 가게에 따라 나가 부모님을 도와 가게를 보곤 했다. 겨울에는 서점 중앙 매대에 놓인 책들을 잠시 치워두고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펼쳐놓고 팔았는데 나는 이 계절의 알고파서점을 가장 좋아했다. 연말연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카드를 받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카드를 고르는 사람들. 열중하는 얼굴들. 혹시나 마음에 드는 카드가 매대 가장 밑에 숨어 있을까 뒤적이고 또 뒤적이며 최고의 카드를 고르는 이들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았다. 그때 난로 위에 그 냄비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서 김치밥이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치우면 엄마는 냄비를 꺼내 점심 도시락으로 싸갈 김치밥을 준비했다. 푹 익은 배추김치를 송송 썰고 총각무도 잘게 다졌다. 김장하고 남은 무채 버무린 것도 따로 두었다가 한 숟가락 넣고 가끔 콩나물 무친 게 남았다면 그것도 넣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고추 볶음을 듬뿍 넣었다. 삭힌 고추를 곱게 다져 갖은양념을 해서 볶아 둔 고추 볶음까지 넣고 모든 재료를 대강 섞어 냄비 바닥에 한 일이 센티미터 두께로 깐다. 그리고 여기에 과하다 싶을 만큼 넉넉하게 들기름을 두르고 마지막으로 찬밥을 올린다. 미리 깔아 둔 김치가 보이지 않게 밥을 잘 펼쳐주면 김치밥 준비는 끝난다. 그래서 우리 집 김치밥은 볶지 않는다. 김치밥을 ‘앉힌다’.


11시가 넘어가면 김치밥 냄비를 가게 한구석에 놓인 난로 위에 미리 올렸다. 음식을 하는 가스레인지가 아닌 난방용 난로라 불꽃이 직접 냄비에 안 닿아서 다 될 때까지 꽤 오래 걸렸다. 아주 천천히 냄비 안의 열기와 김으로 김치밥은 익었다. 난로에 올려놓고도 김치밥을 올려놨다는 걸 잊을 즈음 세상 고소한 냄새가 슬며시 난로의 열기를 타고 코끝으로 전해진다. 보글보글 들기름이 끓으며 김치 사이사이로 스미면서 모든 재료들과 섞이면 거부할 수 없는 냄새가 가게 가득 퍼진다. 시계를 볼 필요도, 익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타는 냄새가 날락 말락 하면 그때다. 김치밥을 먹을 골든 타임이다. 뚜껑을 열고 위에 올린 밥과 밑에 있는 김치를 비비면서 먹는다. 한꺼번에 섞지 않고 먹을 만큼 조금씩 섞으면서. 아, 그 치명적인 맛을 떠올리니 침이 고인다. 음식 냄새라는 것이 먹는 사람한테는 아무리 좋아도 옆에서 맡으면 괴로울 수 있는데 그 시절 서점에 온 손님들 중에 음식 냄새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책이나 크리스마스카드, 연하장에 냄새가 배었을지도 모르는데 손님들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처럼 음식을 시켜 먹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니 당연한 풍경으로 여겼을까. 상점마다 특별한 향으로 가게 이미지를 만든다는 지금의 시대와는 사뭇 다른 그때의 편안함이 가끔은 그리워진다.


그렇게 냄비 하나 가득 든 김치밥이면 세 사람의 점심이 해결되었다. 엄마가 드시다가 손님을 맞으면 아버지가 드셨고, 아버지가 대충 허기를 때우면 또 이어서 내가 먹었다. 숟가락 바통을 이어받아 차례로 돌아가면서 먹는 김치밥은 겨울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눈이라도 내리면 김치밥은 더 맛있어졌다. 폭설이 내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날 뜨겁고 매콤한 김치밥을 호호 불며 먹노라면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게 없었다. 김치밥 덕에 기나긴 겨울방학이 춥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나는 최소의 움직임으로 겨울을 나는 곰처럼 엄마 아버지를 따라 가게로 출근해 김치밥을 먹으며 겨울을 났다. 한없이 느긋하고 행복했던 그 겨울들. 방학이 끝날 때면 나는 조금 커있었다.


몇 해 전부터 아버지가 편찮으시고 요즘 나는 자주 고향에 내려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소읍을 떠나 서울에서 살게 되고 나서는 직장을 그만둬 시간이 생겼을 때나 좀 오래 와있었던 고향집인데 지금은 며칠씩 머문다. ‘서울로 떠난 후 너와 제일 오래 함께 있는구나.’ 하시는 엄마. 오늘은 엄마께 김치밥을 해달라고 했다. 40년 된 골동품 냄비에 김치밥을 앉힌 엄마. 김치밥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시고는 불을 최대한 작게, 꺼지지 않을 정도로만 켜두신다. 한 사십 분쯤 흘렀을까. 김치밥 냄새가 부엌 쪽에서 거실로 넘어와 내 코끝까지 왔다.


사느라 기운을 다 소진한 날, 한참 동안 낯선 나라에 살다 돌아온 날, 작은 도시에 있는 아담한 책방에 들어설 때. 그때마다 떠올렸던 바로 그 냄새다. 김치밥 냄새로 나는 오래전 어느 겨울로 돌아가 알고파서점의 문을 연다. 난로 위에는 김치밥 냄비가 있고 사람들은 카드를 고르고 나는 잡지를 뒤적이던 그때. 부모님은 그 시절은 가난해서 자식들에게 잘해주지 못했다고 하시지만 그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아이였다. 엄마, 아버지의 30년이 담긴 공간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김치밥 냄비 하나 상 가운데 놓고 둘러앉으니 내일이라도 부모님을 따라 나가 서점 문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오늘 밤엔 여전히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알고파서점 이야기나 실컷 나눠야겠다.




<김치밥 레시피>


1. 먹다 남은 신김치들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배추김치는 물론 총각김치, 갓김치 모두 가능.

일단 모든 김치를 쫑쫑쫑 작게 썰어서 냄비 바닥에 일이 센티미터 높이로 평평하게 깐다.

김치국물도 자작하게 넣는다.


2. 고추장아찌가 있다면 두세 개 정도 다져서 넣는다. 없으면 생략해도 좋다.


3. 들기름을 아주 듬뿍 깐 김치 위에 둘러준다.


4. 찬밥을 김치가 안 보이게 잘 펴서 덮는다.


5. 가장 약한 불에 김치밥 냄비를 얹어둔다.

30분 이상 그대로 두고 약간 타는 듯한 냄새가 나면 완성이다.


6. 밥과 김치를 섞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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