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몇 살부터 여행을 시작할까. 나의 여행의 시작은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였으니 스물다섯 살 무렵이었다. 휴가를 내서 갔던 짧은 여행들,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떠났던 때로 길고 먼 여행들. 나는 점점 더 여행에 빠져갔다. 문제는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말을 타고 달리다가 혹은 세 걸음쯤 걷다가 뒤돌아서 영혼이 잘 오고 있는지 살핀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다녀온 곳을 바라보며 내 영혼도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여행은 늘 나의 영혼을 잡아두고는 꽤 오래 놓아주지 않았다. 몸은 여기 있는데 영혼은 그곳에 있는 듯한, 그래서 나는 언제나 절반만 나였던 것 같다.
한국의 삶에 잘 정착하지 못했던 건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여러 이유들로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여기는 잠시 머무는 곳이고 곧 다시 떠날 것처럼 마음의 여행가방을 풀지 않고 살았다.
어느새 쉰여섯 살, 나이와 함께 나의 여행도 나이가 들었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의 여행. 이제서야 여행을 돌아본다. 지난 여행들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왔을까. 여행이 내게 무엇을 주었길래 나는 자꾸만 뒤돌아 앉아 영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까. 새삼 여행의 이유를 생각해 보는 시간 동안 몇 개의 장면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이제 당신께 들려주고픈 장면들. 떠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나의 보물들.
말레이시아 쁘렌띠안(Perhentian) 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멀었다. 조호르바루(Johore Bharu)에서 밤버스를 타고 쿠알라 베숫(Kuala Besut) 터미널에 새벽에 내렸다. 캄캄한 터미널에서 차가 다닐 시간까지 기다려 동이 트자마자 택시를 타고 베숫 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고생스러워도 괜찮았다.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바다를 보기 위한 수고니 그마저도 달가웠다. 마음은 그런데 드디어 섬으로 데려다줄 배에 오를 무렵이 되자 피로가 밀려왔다. 눈이 자꾸 감긴다. 파도가 일렁여 보트는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흔들렸다. 먼저 올라탄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치켜뜨고 배에 오르는 이들을 구경했다. 말레이시아 현지인들, 나처럼 먼 곳에서 온 외국인들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여기까지 와 이 배를 함께 타는구나, 그렇게 멍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일행으로 보이는 두 사람도 배에 올랐다.
스페인계의 명랑한 여자, 여자와 대조적으로 차분해 보이는 남자. 먼저 배에 오른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잠깐 잡아 타는 걸 돕는다. 남자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제야 남자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여자는 느긋하다. 손을 잡아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말로 남자의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일러준다. 넘어지면 어쩌나 싶은데 여자는 전혀 마음 졸이지 않아 보인다. 무심한 듯 조금 터프하게 대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여자의 눈빛에는 당연히 남자가 해낼 거라는 믿음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자의 표정도 평온하다. 여자의 태도에 대한 서운함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애정을 담뿍 받는 이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배에 오른 두 사람이 자리를 잡자 배는 섬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참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바다가 내 눈앞에 있다. 바다를 감상하다가 나는 이따금 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멋진 풍경이 나타날 때면 남자의 귀에 대고 뭔가를 설명해 주는 여자. 남자가 작은 미소를 짓는다. 여자는 어떤 단어로 바다를 하늘을 섬들을 설명했을까. 나는 쁘렌띠안 섬에 바다의 색을 '보러' 온다고 생각했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다니 어리석었다. 바다는, 아니 다른 어떤 여행이라도 그럴 것이다. 소리로 또 온몸으로, 마음으로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첫 번째 선착장에서 두 사람이 내린다. 그 모습을 모두가 아슬아슬하게 바라본다. 다른 승객들은 불안하기만 한데 여자는 좀 전 배에 올라탈 때처럼 태평하다. 우선 말로 설명해 주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남자가 한 발을 내딛으며 비틀, 하자 그때서야 손을 잡는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배에서 내리는 일마저 그저 즐거워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우정일까 사랑일까. 둘 다 아닐 것 같다. 형태를 알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이나 단순히 우정이라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있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우리는 모두 그 이름 모를 관계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본국에서 출발해 이곳까지 멀리 온 두 사람의 길고 긴 여정을 상상해 본다. 분명 저렇게 내내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머문 해변과 달라 그 뒤 섬에서 두 사람을 다시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안다. 쁘렌티안 섬에서 그들은 어떤 여행자들보다 멋진 시간을 보냈으리라.
두 눈을 잃어 다시는 /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다 해도 / 난 괜찮아 네가 나를 볼 수만 있다면
('내 숨이 기원'중에서_ 김인자)
이제 쁘렌띠안을 떠올리면 민트빛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시 속에 등장하는 이들과 닮은 두 사람이 떠오른다. 그 아름다운 장면을 가슴에 새기려고 나는 그 먼 곳으로 떠났나 보다.
미얀마 중동부 해발 약 900m에 있는, 장장 길이 22km에 너비 11km에 달하는 인레(Inle) 호수를 둘러보려면 카누처럼 생긴 작은 배를 타야 한다. 여행자들은 보통 하루 동안 배를 빌려 뱃사공과 함께 다닌다. 오전 내내 배에 올라탔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유명한 절들과 소수민족 시장, 연꽃 줄기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공방, 손으로 일일이 예쁘게 마는 담배 공장, 수상가옥, 물 위에 떠있는 신기한 밭 쭌묘... 숨 가쁘게 구경을 다녔다.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자 배는 다시 출발했다. 이번에는 아주 작은 절이 있다며 배를 호숫가에 세웠다. 그리고는 낯선 발음의 절 이름과 데리러 올 시간만 알려주고는 가버렸다.
절이 바로 나올 줄 알았는데 인가도,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왔다 갔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그때다. 어디선가 좀 험악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들개한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 살짝 떨고 있는데 개는 다행히 우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 주었다. 그런데 조금 앞으로 걸어가더니 우리 쪽을 가만히 돌아본다. 뭐지? 따라오라는 건가? 또 조금 앞으로 간다. 또 뒤돌아본다. 따라오라는 뜻이 분명하다. 우리가 누렁이를 따라가 보기로 하고 조금씩 움직였다. 십분 쯤 걸었을까.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 누렁이를 따라갔더니 놀랍게도 절이 나타났다. 마당에는 황금빛 탑이 있었다. 가이드가 일러준 그 절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조심스럽게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절에는 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셨다. 법정 스님과 너무 닮아 우선 놀랐고, 스님이 머무는 공간 안에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동굴에 또 놀랐다. 스님이 동굴 안에 들어가 보라고 손짓을 하신다. 우리는 한 사람씩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동굴 속에 부처님이 계셨다. 어두운 동굴 속에 밝혀진 촛불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불교신자도 아닌데 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오전 내내 인레 호수 여기저기를 구경한다고 들떠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동굴에서 나오자 스님이 차를 주셨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으니 우리는 서로 미소만 지으며 홀짝홀짝 차를 마셨다. 때마침 비가 내려 법당이자 스님의 거처 안에는 빗소리만 가득했다. 그때 어디선가 야옹 소리가 들리더니 아주 어린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스님한테로 다가오더니 스님의 무릎 위로 올라간다. 또 한 마리는 아예 가사 안으로 들어간다. 또 한 마리는 스님의 어깨를 타고 올라가 옷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며 논다. 늘 있는 일인지 스님은 가만히 고양이들이 놀게 둔다. 한참을 있었는데도 어미 고양이는 보지 못한 걸로 봐서는 아마 스님을 엄마로 알 수도 있겠다. 평화로운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우리는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뭐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가 아닌, 평등해서 자연스러워서 아름다운 관계. 생명체들이 함께 살았을 태초의 모습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가 그치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 마치 마중 나온 것처럼 우리를 데려다주고는 어느새 사라졌던 누렁이가 신기하게도 다시 나타났다. 아까 절로 올라올 때처럼 앞으로 먼저 걸어가며 호숫가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지금쯤 누렁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때처럼 배에서 내려 어디로 갈지 헤매는 여행자들을 안내해주고 있을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동산을 여전히 누비고 있기를 바라지만 혹여 생이 다했다면 누렁이는 분명 열반에 들었을 것이다.
가끔 인레 호수에서의 그날을 생각하면 누렁이도 스님도 애기 고양이도 내가 만난 게 정말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이렇게 사진도 있는데 나는 자꾸 그 기억이 꿈만 같다.
오늘은 괜히 쁘렌티안 섬 쪽을, 인레 호수 쪽을 바라본다. 내 영혼의 일부가 아직 거기에 있다. 천천히 천천히 돌아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