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주웠어. 이 명랑하고 따뜻한 마음을...

# 04

by Jean


퍽,

뻥,

빡,

빠그작...


나는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새해가 시작되고 며칠 안 된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집에서 초밥을 만들어 먹기로 해 회를 주문해 두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돈암시장 안, 주로 포장을 해가는 작은 횟집. 광어회를 뜨는 사장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소리가 들려왔다. 긴 비닐 앞치마를 입은 청년이 빈 상자들의 모서리를 발로 밟아 납작하게 만드느라 나는 소리였다. 장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상자에 적힌 이름들로 봐서 정육점에서 나온 것들이다.


퍽, 빡, 뻑... 소리는 계속 됐다. 손으로 정리하면 안 되나, 말은 못 하고 마음속으로 눈살을 잔뜩 찌푸린 나는 얼른 회를 받아 그 자리를 떠나야지 생각했다. 그때였다. 청년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나는 일이라도 있는 양 톤이 명랑하고 높았다.


“제가 할머니 오실 줄 알고

박스 정리하고 있었죠.“


청년의 말이 시장 안에 퍼졌다. 순간, 어둡고 조용한 시장통이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예쁜 조명이 딸깍 켜진 것처럼. 언제 오신 건지 박스를 모으는 할머니가 청년 앞에 서있다. 할머니는 “아이고, 고마워, 고마워.”하며 청년이 상자들을 마저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대화가 더 이어졌는데 잘 안 들리더니 다시 또렷이 들려왔다. 이번엔 할머니의 말이다.


“장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네?”

“나 박스 많이 주게.”



청년의 격의 없는 호의에 마음이 편안해진 할머니가 던진 농담에 나도 빙긋 웃었다. 키 작은 할머니와 할머니 키의 배는 돼 보이는 청년은 꼭 할머니와 손주 사이처럼 다정해 보였다. 할머니가 시장을 지나가는 시간을 알고 있었으니 처음 만난 게 아니다. 청년이 그렇게 늘 상자를 챙겨드렸나 보다.


참 희한하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듣기 싫었던, 발로 푹푹, 뻥뻥 밟는 소리가 전혀 시끄럽지 않다. 해변에 앉아 하늘을 향해 쏘면 푱 날아가 반짝이며 터지는 불꽃놀이 소리 같지 뭔가. '박스야, 빵빵 터져라!‘


나는 광어회를 받아 들고 시장을 나섰다. 마스크를 하고 있어 얼굴은 모르지만 체격과 목소리를 기억해 두었으니 고기 살 일이 있을 땐 무조건 횟집 부근 정육점부터 가봐야겠다. 할머니 말처럼 장사가 잘 되면 청년은 돈 많이 벌어 신날 테고, 그러면 빈 상자도 자꾸자꾸 나와 할머니께 더 많이 드릴 수 있을 테니.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진 나는 친구에게 다음 모임 메뉴는 무조건 삼겹살이라고 선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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