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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태 Mar 31. 2021

이혼할 뻔 했다, 그놈의 낚시 때문에...

"김형! 이번 주말 특별한 일 없으면 봄맞이 낚시 어때요? 이런 화창한 봄날에 집에 있으면 계절 모독이라구!"

"그건 그런 거 같은데...한동안 낚시를 안해서인지 내키지 않지만, 내 전화하리다. 이형!"


서울 신당동에 사는 김상빈(자영업)씨는 한때 낚시광이었다. 그는 지난 가을 가족들 앞에서 낚싯대를 꺾었다. 자녀들을 동반한 부인의 시위에 다시는 낚시하지 않기로 했었다. 낚시를 통해 알게 된 이씨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2년 전 처음 낚시를 시작한 김씨는, 주말엔 거의 집에 있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 일찌감치 가게를 정리하고 낚시터로 향했다.


"낚시는 말이지, 밤새 혼자 생각할 여유가 있어 정신건강에 참 좋은 거 같아"


김씨가 낚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부인은 그런 줄 알았다. 또 시간 날 때 가끔 낚시를 다녀오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수긍하는 눈치를 보인 게 잘못이었다.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금요일 저녁이면 낚시가방을 메고 떠나 일요일 늦은 밤에 돌아오곤 했다.


귀가한 남편 모습도 가관이었다. 퀭하니 들어간 눈과 밤새 뭘 했는지 담배와 술 냄새가 진동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은 뭘 했는지, 관심은 아예 없는 듯 했다.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다 잠이 든다.


낚시 초창기엔 그렇지 않았다. 낚시터에서 돌아온 남편은 잡은 물고기를 내보이며, "같이 간 사람들 모두 공쳤는데 나만 잡았다"고 으스대기도 했고, 가족을 위해 맛있는 매운탕을 끓이겠다며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가까운 친척 결혼식도 ‘바쁜 일 때문이 못 간다’란 거짓말을 해 가며 낚시를 다녀오는 남편을 볼 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안 되겠다. 당신 낚시 포기해라!"


당연하겠지만, 남편은 '개인 사생활 침해, 타인 취미 간섭' 등 온갖 허접한 핑계를 내세워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아이들을 동원한 아내 맹공에 백기를 들었었다.


이후, 남편 행동이 이상했다. 주말이면 등산하는 일이 잦았다. 부인은 낚시금지 쇼크로 남편 기죽을세라 등산까지 말리진 못했다. 등산복과 등산화도 아내가 사 줬다.     


웬일일까! 등산 다녀온 사람 옷에서 물고기 비린내 나는 일이 잦았다. 예감은 적중했다. 등산을 핑계로 남편은 매주 낚시를 갔던 것임이 틀림없다.


몰래 차 트렁크를 들여다보니 낚싯대며 뜰채, 살림망, 온통 낚시용품으로 가득했다.


"가족은 공동체 의식이 없으면 무너진다는 거 알지? 가족 간 불신이 있어도 안 되는데, 당신은 그걸 깨뜨렸다. 아이들 앞에서 묻겠는데 낚시 계속할래? 이혼할래?"


부인 눈치를 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결국 차에 있는 낚싯대를 모두 꺼내 부러뜨리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불과 몇 달 전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낚시 때문에 알게 된 이씨로부터 느닷없는 봄날 출조 제안이 온 거다. 순간 '까짓 낚싯대 새로 사면되지'란 생각을 했다. 출조 여부를 전화로 알려 주기로 했지만, 부인과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캠핑을 위장한 출조


"요즘 캠핑이 대세인 것 같아. 창고에 텐트 있지? 그거 가지고 이번 주말 우리 가족캠핑 어때?"

"아니, 평생 그런 소리 한 번도 없더니, 이 양반이 나이를 먹었나? 어디 좋은 데라도 있어?"


결혼 전 소소한 모험을 즐겼던 부인이 호기심을 보였다. 낚시꾼 전문용어로 이런 상황을 ‘입질이 왔다’고 한다. 밖에서 잠을 잔다는 말에 아이들이 더 난리다.


"이제 다 준비됐지? 근데 찌개거리는 뭘로 하지?"

"내가 고기 잡으면 되지."


캠핑준비를 위해 오랜만에 김씨 부부가 시장을 찾았다. 부인의 중얼거림에 김씨는 은연 중 그렇게 말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부인의 시선을 피한 김씨는 ‘애들이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란 말로 주제를 돌렸다. 부인 입장에서 남편 취미를 억눌렀단 미안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얼마나 낚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면 가족캠핑을 생각했을까’. 순간 남편이 좀 측은해 보였다. 


"대신 낚시는 가족들과 같이 해. 당신 말고 우리 식구는 아무도 낚시하는 방법 모르니까, 당신이 애들 가르쳐 줘. 많이 잡은 가족들 상품도 당신이 만들어 봐"


김씨는 순간적인 아내 지혜에 놀랐다. 아내 말은 ‘의미 없이 야외에 나갔다가 오는 것보다 야외에서 작은 가족행사를 만들면 추억은 배가될 거란 거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 앞에서 이번 행사 취지를 설명하자 아이들은 ‘아빠 최고!’를 연발했다. 


시골 낚시터새로운 추억이 만들어졌다


김씨 가족은 캠핑장소를 강원도 화천 서오지리 마을로 정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 중 깨끗한 곳이 좋을 것 같다는 부인 말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지난 가을 그곳에서 수십 수의 붕어를 잡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엔 아내가 무서워 낚은 붕어를 집에 가져가지 못하고 모두 놓아주었지만, 그 붕어들이 꼭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멋지게 붕어를 낚아 낚시 때문에 구겨진 체면을 살리리라!’


전날 밤, 김씨는 낚시터 인근 마을 반장인 박씨에게 전화를 했다. 김씨는 출조전 박씨에게 조황을 물어 보곤 했었다. 


"여긴 아직 수온이 덜 올라 며칠 더 있어야 입질이 들어올 거 같은데..." 

정직한 박씨는 ‘붕어를 꼭 잡겠다면 남쪽지역으로 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좀 이르다고 꼭 낚시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이번엔 가족캠핑이 목적이니까 그냥 가겠습니다."

"연락이 뜸해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는데, 오시면 나야 좋지."


서오지리. 연꽃 마을로 유명한 동네다. 한여름 강변 3만여 평 규모의 늪지엔 연꽃이 지천이다. 5월부터 9월까지 수련을 시작으로 어리연, 참연 등 수십 종의 연꽃들이 자연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연꽃단지 아래 연못처럼 움푹 들어간 곳, 김씨가 즐겨 찾던 포인트다.


"사모님은 내가 오늘 첨 뵙지만, 우리 김씨는 낚시꾼 중에 모범이예요. 돌아갈 때 다른 사람들은 쓰레기도 뭐고 다 버리고 집에 가기 바쁜데, 김씨는 남들이 버린 쓰레기도 다 주워 가신다우. 그것 때문에 내가 김씨를 늘 환영하기도 하지만...허허~"


'왜 이 마을 반장이란 사람이 우리가족 일행을 특별히 맞이해 주는지 궁금했는데, 우리 남편이 쓰레기를 잘 치워서?...' 김씨 부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서로 너털웃음 웃어가며 '금년도 농사준비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둘 사이엔 계산되지 않은 정감이 묻어있는 듯했다.


‘농사준비에 바쁜데 그러지 말라’는 만류에도 박 반장은 텐트 설치와 낚싯터 닦는 것을 도왔다.


"어! 김씨, 낚싯대가 뭐 그래?"

"지난번에 쓰던 거 다 잃어 버려서 급한 대로 오면서 샀어요. 이번엔 캠핑이 목적인데 뭐..."

"그래도 그렇지. 꾼 체면이 영 말이 아닌걸."


박씨는 김씨가 낚싯대를 모조리 부러뜨렸던 사건을 모른다.


아이들에겐 짧은 낚싯대를 펴 주고, 김씨는 부인과 나란히 두 칸 반대 낚싯대를 드리웠다. 박씨가 눈을 찡긋했다. 저녁을 준비해 놓을 테니 집으로 오라는 눈치다.


"잘 봐! 떡밥에 물을 이 만큼 붓고 밀가루 반죽하듯이 이렇게 개는 거야."


요리에 익숙한 아내는 내 말이 우습다는 듯 붕어용 떡밥을 쉽게 만드는데, 아이들은 "고소한 냄새 나는데 이거 먹으면 죽어요?" 라며 장난치기 바쁘다.


"에이 그렇게 말고, 줄을 잡고 초릿대를 이 정도 당기다 가볍게 놓으면 튕겨져 나가잖아."


역시 아내에게 낚시기법 전수는 무리였다. '그게 아니고, 잘 봐'를 되풀이 했지만 매번 던지는 포인트가 들쭉날쭉 찌 높이도 매번 다르다.


"근데 왜 고기는 안 잡히는 거야?"


아뿔싸. 순진한 아내는 낚시만 담그면 물고기가 기다렸다는 듯 바늘을 물고 나오는 줄 알았나 보다. 


"입질이 오든지 말든지 떡밥을 달아서 던지고, 좀 있다가 또 떡밥을 달아 던지고를 반복해야해. 그래야 고기들이 떡밥 냄새를 맡고 모이기 시작하거든."


어떤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몰두하는 습관이 있는 아내성격 탓일까, 미끼 다는 것하며, 던지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애초부터 낚시엔 별 관심이 없던 아이들은 진즉에 낚시터를 떠나 멀리서 재잘댄다. 개구리 알 구경에 정신 팔린 듯 논 밭두렁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난리다.


‘김형! 빨리 오십시오. 소주 한잔 합시다.’


기다리던 박 반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박 반장이 마련한 저녁식사. 경사진 밭에서 캔 고들빼기 무침과 냉이 된장국이 별미다. 더덕구이는 특유의 향긋함이 강했다. 


“이거 하나만 있어도 소주 두병은 거뜬한데”

박 반장이 신의 한수라며 내 온 잡고기 매운탕. 소주가 땡긴다. 이상한 건 집에선 거들떠보지도 않던 된장국과 매운탕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 


"시골에 오면 아이들이 자연과 동화돼 식성도 바뀌게 됩니다."


박 반장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대견스럽다는 눈치다.


엄청난 작전이 시작됐다


식사 중에도 김씨 생각은 온통 낚시터에 가 있었다. 몇 개월 만에 어렵게 잡은 기회.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한잔만 더!’

그놈의 딱 한잔이 벌써 다섯 잔 째다. 이어지는 박 반장의 친절을 뒤로하고 가족들과 서둘러 낚시터로 향했다.


캐미컬 라이트 불을 밝히고 찌를 뚫어져라 노려봐도 미동이 없다. '월척이 찌 가까이 다가온다'는 상상을 하며 김씨는 참으로 오랜만에 부인과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눴다. 이미 낚시에 싫증 난 아이들은 텐트에 들어간 지 오래다.


"두 사람 데이트 방해할까봐 안 나올까 하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있어야지."

밤 10시쯤 되었을까, 조황이 궁금했던지 박 반장이 김씨 부부를 찾았다.


"낚시는 말이야 끈기와 저력이 있어야 해!"

김씨가 밤새 낚시를 하고 싶어 하는 걸 눈치 챘는지, 박 반장은 김씨 아내를 보며 말을 건넸다. 아내가 일어났다.


"오랜만에 두 분 이야기나 실컷 나누세요! 난 들어가 소주와 안주 준비 할게요."

집에선 소주 ‘소’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던 아내의 너그러움. 아내는 남편과 단둘일 땐 잔소리꾼이지만, 옆에 손님이라도 있는 날이면 천사표로 변한다. 못 말릴 왕 내숭이지만, 박 반장 앞에서 으쓱하게 만들어 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작전개시?"

"콜!"

능숙한 솜씨로 박 반장은 아내의 낚시 바늘에 몰래 가져 온 팔뚝만한 붕어를 뀄다. 김씨는 큰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무슨 영문이냐며 안주 준비하다 달려온 아내에게 김씨는 "당신 낚시에 붕어 걸린 것 같아. 빨리 당겨" 라고 외쳤다.


아무리 꿰어 놓은 붕어라도 팔뚝만한 크기면 힘이 세다. "대를 세워"란 외침에 아내는 "도와줘"를 외친다. 박 반장은 아내 옆으로 잽싸게 자리를 옮겨 힘겹게 끌어내는 척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큰 붕어는 또 처음 봅니다."

"반장님~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내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지 목소리마저 떨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사실은 이랬다


김씨는 서울에서 조황을 묻기 위해 박 반장에게 전화를 했었다. 이에 박 반장은 이른 봄이라 찬 수온 탓에 낚시가 잘 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었다.


"이번에 가족들과 함께 가는데, 아내가 고기를 잡는 연출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야 가족여행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요"

"허허~ 그거라면 걱정마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사모님이 자리를 잠시 비우게만 해줘요."


어부와 병행해 농사를 짓는 박 반장은 당일 아침 그물로 잡은 물고기 중 잡어는 매운탕을 위해 빼 놓고, 커다란 붕어 몇 마리를 별도로 양동이에 담아 두었었다.  


두 사람의 그런 작당에 의해 대물 붕어가 낚인 것을 김씨 아내는 모른다. 소주 안주 준비하러 갔던 기억도 까맣게 잊었는지 그녀는 낚시에만 열중이다. '소주가 준비된 다음에 일을 꾸밀걸'. 순간 김 씨는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다. 


"고기가 한번 낚이면 물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고기들이 달아나 한동안 입질이 없어요."


박 반장의 말에 눈치 빠른 아내는 서둘러 소주와 안주를 준비해 왔다. 같은 술이라도 강변에서 마시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평소 술을 입에 대지 않던 김씨 아내도 '이래서 남자들이 낚시를 즐기나 봐요' 라며 한잔 들이켰다.


"사실 서울에서 주량이 소주 1병인 사람이 여기 오면 2병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아요. 맑은 공기가 원인이겠지만,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인 거 같아요."


박 반장이 그럴싸한 명언을 만들어 냈다. 박 반장과 김씨 부부 대화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술이 좀 올라오는 것 같아요”

김씨 아내가 그렇게 말하며 텐트로 이동한 밤 12시 훨씬 넘어서까지 박 반장과 김씨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차피 내일 아침 매운탕 거리도 있어야 하니까, 내가 보관해 둔 붕어 몇 마리 있는데, 그것들 살림망에 넣어 두고 내일 아침 김씨가 잡았다고 하세요."


하긴 그랬다. 아내가 잡은, 실제로 잡은 건 아니지만, 한 마리 가지고 매운탕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 박 반장은 양동이에 보관했던 붕어를 가져와 김씨 살림망에 넣었다.


아내에게 실토해야 하나


"우와~ 이게 다 아빠가 잡은 물고기야?"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망을 들어 보이며 환호성을 쳤다. 김씨 아내 눈빛도 그러느냐고 묻는다.


"에이, 난 못 잡고 박 반장님이 새벽에 다 잡았지 뭐~"


묵은 김장김치로 끓인 붕어 매운탕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늦은 아침을 해결한 김씨 가족일행은 강변 산책에 나섰다. 강변을 따라 형성된 오솔길. 2km여 떨어진 원천리 동구래 마을까지 정취는 도심에서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 준다.


김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속인 게 자꾸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사실대로 말할까! 그러면 아내와 아이들 즐거운 기분이 바뀔지 모른다’ 


'좋은 기분으로 돌아가자. 다음날, 사실은 이랬노라고 아내에게 고백하자. 그것 또한 즐거운 추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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