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부족함을 두 팔 벌려 환영해
누군가를 진심으로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의 부족함까지 함께 마주하는 일이다.
그 사람의 모자란 부분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오래가는 사랑에서는 그걸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끼리의 계약이 아니라, 아직 덜 자란 두 사람이 서로의 틈을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해서 나를 갈아 넣으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내가 무너지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채워주는 사랑은 언젠가 멈추게 되어있다.
상대의 빈틈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내 정신이 먼저 단단해야 한다.
사랑은 ‘견딜 수 있는 선 안에서의 자비로움’이다.
상대의 부족함을 가뿐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사랑은 건강하게 오래간다.
“네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불완전한 모습은 내게 흠이 될 수 없어.”
이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시작이다.
그 사람의 결함을 알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사람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일.
그건 낭만이라기보다, 용기 있는 판단에 가깝다.
타인의 불완전함을 굳이 짊어지려는 용기, 그리고 불완전 속에서 의미를 찾으리라는 판단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못난 구석이다.
어떤 이는 유하고 사회성이 뛰어나지만, 사실은 눈치를 과하게 본다.
어떤 이는 마음이 넓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일엔 야박하게 군다.
또 어떤 이는 관계에 미련 없어하지만, 사실은 한없이 사람에 불안하다.
겉으론 유쾌해 보이지만, 누군가를 깎아내려야 안정을 찾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데에 음침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그 사람의 밑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때,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과연 너의 심연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그 깊은 곳에 자리한 결함은, 사실 혼자 힘으로는 채우기 어렵다.
마치 내가 내 등에 파스를 제대로 붙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내 등에 파스를 붙여주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이다.
등에 파스 붙이는 것으로 예시로 들어 로맨틱하진 않지만, 이것이 사람이 사랑을 누리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물론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간다.
“아니, 굳이 누군가를 통해 나를 채워야 하나?”
“내 결핍이 있다한들, 그것이 나를 굶겨 죽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없다 셈 치면 그만 아니야?”
혼자여도 밥 잘만 떠먹고, 잠도 푹 자고, 그런대로 잘 산다.
등에 파스 붙이는 일도, 조금 불편하지만 혼자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할 사람은 ‘잘 사는 나’보다 그 사이사이에 비어있는 곳을 본다.
나의 빈 곳을 하자라고 생각하고 불편해하거나 싸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안아준다.
믿을 만한 사랑은 삶의 질을 아주 높여준다.
서로의 결핍을 완성시키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 바로 사랑의 존재 가치다.
상대가 혼자서 파스를 잘 붙일 때까지 돕는 게 아니라, 못 붙여도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너는 이런 게 부족하네. 그것만 고치면 난 널 더 사랑하게 될 거야”가 아니라, “너의 부족한 부분도 네 모습의 일부야. 그것까지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
나의 부족한 점을 싸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의 곁은, 방금까지 햇빛에 말린 이불처럼 포근하다.
결국 오래가는 사랑은 서로가 완벽함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부족함을 환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상대의 결핍을 두 팔 벌려 맞이하려면, 나 역시 나의 부족함을 상대에게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치부를 알게 된다는 건 당연히 겁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있다면, ‘아, 이 사람은 나의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곧바로 나를 다독여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상대의 불완전함을 품어줄 때, 사랑은 불안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안정적인 형태로 진화한다.
그 역설적인 상태의 공존이, 내가 너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나는 평생 어딘가 나사가 몇 개 빠진 채로, 나도 모르게 결함을 노출하며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배움의 현장이자,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게 되는 전쟁터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서로의 흠을 교정하려 하기보다, 그 흠이 있는 그대로의 모양으로 어울릴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사랑하고 오래 사랑하는 이들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