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체력, 절대 체력!!!

고마움을 제때 전달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by 나울

감사한 일이 생기면 나는 그것을 ‘빚’이라고 느낀다.

나쁜 의미가 아니고, 단지 누군가의 친절과 배려는 그 사람의 에너지를 빌린 것 같은 기분이라서다.

그래서 나는 그 빚은 돌려줘야 마음이 편하다.

물론 물질적으로 갚을 수 있다면 단순하겠지만, 나는 물질적으로 모든 걸 해결할 만큼 풍요로운 지갑도 없을뿐더러, 세상은 그렇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고마운 순간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이자 인생에 꼭 필요한 행동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말로 전하는 고마움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그 안에는 타이밍과 더불어 마음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물질적으로 갚는 것보다 번거로우며 가까운 사이일수록 머쓱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고마움을 직접 표현하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이자 예의이다.


문제는, 이것이 체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누구라고 해서 고마운 마음에 안 베풀고 싶겠는가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작은 친절을 건네는 일은 결국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몸이 지치면 정신이 멍해지면서 마음의 감각도 무뎌진다.

마음을 베푸는 말 한마디가 수고스럽고 머리 아프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실은 무심한 게 아니라 단순히 체력이 바닥난 것일 수도 있다.

이 사회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 관계에서 고립되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로 체력이 좋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그 여유가 여러 사람을 끌어당기는 구조를 만든다.

사랑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좋은 성격’이 아니라 ‘튼튼한 체력’ 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도움을 받거나 주는 일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빚지는 기분이 싫다며 감사할 기회를 차단하려 한다.

‘나도 안 받을 테니, 너도 주지 마’식의 태도다.

나는 이런 식의 태도가 불쾌하고 또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인생의 구조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야생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와 서사로 얽힌 커뮤니티다.

자고로 '도움'이란, 내가 원할 때만 골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누군가의 배려로 하루가 조금 더 부드럽게 흘러가고, 말 한마디 덕분에 하루의 효율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은 별 탈없이 운이 좋구먼?” 정도로 넘기곤 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배려와 수고들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그런 배려에는, 그 사람의 사려에 집중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섬세함이 담겨있기도 하다.

공기 같은 그 수많은 도움들에 일일이 보답할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감사에는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나는 모르고 넘어가지만 상대는 알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마음을 썼다는 걸 말이다.


그런데 체력이 떨어지는 날엔 이 감각의 날이 무뎌진다.

고마워야 할 순간에 고마워하지 못하고, 보답해야 할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황금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얼마 전 아주 후회스러운 일이 있었다.

카페 갈 일이 잦은 나에게, 건너서 아는 지인이 친구를 통해 나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일단 나는 친구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연락처도 없고 얼굴 볼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친구와 지인이 새로운 게임을 하려는데 사람 수가 부족했는지 겜알못인 나도 합류하여 같이 게임을 하게 된 날이 있었다.

디스코드를 켜고 서로의 음성을 들으며 하는 게임이라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게임을 끈 후에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머리에 스치는 한 마디,


“뫄뫄씨! 그때 커피 보내주신 거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그 말 한마디 직접 건네는 것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기프티콘 받고 나서 처음 조우하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요즘 너무 피곤하고 멍한 상태여서이다.

컴퓨터를 끄고 나서야 ‘아… 말했어야 했는데’ 하며, 앉은자리에서 한참을 후회했다.

그날 밤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도 목구멍에 가시가 찔린 듯 마음이 따꼼따꼼 불편했다.


그 일을 계기로 확실히 느꼈다.

고맙다는 말을 제때 하지 못하면 마음이 오래 불편하다는 사실을.

미운 감정은 좀 늦게 표현하더라도, 고마운 감정만큼은 제때 전해야 한다고 각성 아닌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나의 현실 체력이었던 것이다.


전등을 켜기 위해선 전기가 필요하듯이,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체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닌 듯하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제때 하기 위해 오늘도 정말 하기 싫은 맨몸 근력운동을 하러 가야겠다.

흑.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