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오염시키지 않을 책임
토마토를 키울 때, 흙에 피를 뿌리면 더 싱싱하게 자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강렬했다.
지금까지도 머릿속 깊이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다.
그건 단순히 토마토의 성장 방식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원리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피를 먹고 자란 토마토.
그 이미지는 어쩐지 삶 전체를 은유하는 것 같다.
어떤 것도 완전히 혼자 자라나지 않는다는 사실, 우리가 딛고 있는 모든 자리엔 이미 누군가의 흔적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오며 지나온 길 중,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은 없다.
어떤 말 한마디, 어떤 친절, 혹은 그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무심한 배려들.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삶은 그렇게, 서로의 흔적이 얽혀 형성되는 것이다.
그걸 자각하고 나니, 나는 내가 완전히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나를 이루고 있는 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지나쳐간 사람들, 스쳐간 말들, 그리고 나도 모를 수많은 관계의 흔적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는 말과 행동들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흘린 무수한 흔적들이 언젠가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어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다.
가끔 사람은 스스로를 무능하고 쓸모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확확 대체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내가 확실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느끼면, 몸이 움츠러들고 마음은 애매한 위치에 붕 뜨게 된다.
썩은 토마토의 기분이 이럴까?
하지만 사실 모든 존재는 이미 순환의 일부로 사회에 기능하고 있다.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기도 하고, 단 하나의 선택이 완전히 다른 결실로 이어진다.
그건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레 돌아가는 흔적의 사이클이다.
어쩌면 ‘피를 먹고 자란다’는 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시간, 실패, 감정, 고통 같은 것들이 흙 속 깊이 스며들어 다음 생을 자라게 하는 과정.
생명은 늘 그렇게 순환하며 서로를 연결한다.
그래서 요즘은 내 흔적이 어떻게 남을지를 생각한다.
내 피가 대단한 영양분이 되길 바라진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내 피를 먹고 자라게 된다면, 그 피가 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맑은 피, 그것은 완벽하거나 고결하다는 뜻이 아니라, 가능한 한 투명하게 살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내가 남길 흔적이 어차피 누군가에게 흘러들어 갈 것이라면, 적어도 해롭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해로운 피는 나부터도 삼키고 싶지 않다.
결국 생(生)은 거대한 순환 속에서 피를 나누는 일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영양분을 주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분해되고, 그 위에서 맛있는 토마토가 자라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이 굉~장히 피곤하면서도 조금 덜 고독하다.
어디까지가 내 피고 어디부터가 남의 피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우린 서로 스며들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흡수되어도 무해할 만큼의, 딱 그 정도로만 맑은 농도로 존재하고 싶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것이 최소한으로 가져야 하는 책임감일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나의 흔적과 닿을 누군가를 위해, 조금은 단단하고 싱싱한 토마토가 자랐음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