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해, 근데 나부터 잘 되고 나서

삼류의 심술에서 벗어나는 법

by 나울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내 상황이 여유롭지 않을 때 가까운 이의 도전이나 성공 소식이 들려오면, 겉으로는 응원의 말을 건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묘한 불편함이 꿈틀거린다.
아직 큰 성공을 이룬 것이 아닌데도 그 사람의 잠재력과 노력이 내 눈에 보이는 순간부터 불안이 몰려온다.
심장은 쿵쿵쿵 빠르게 뛰고,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다.
못난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럴까.

아니,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질투심을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경우다. 어떤 이들은 질투심을 동력 삼아 미친 듯한 성장 속도를 보여준다.
'저 사람보다 더 잘해야지'라는 경쟁심이 발화 버튼이 되어 불을 붙인다.
하지만 그런 성향이 없는 사람에게 질투는 오히려 무기력과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둘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경우다.

‘머지않아 저 사람이 나를 훌쩍 추월하겠지’라는 위기감은 곧 불안으로 번진다.

저 사람과 경쟁을 한다면 내가 밀릴 것 같은 직감, 그리고 결국 나는 뒤처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셋째, 나르시시스트적인 성향 때문이다.
나의 반경 10km 안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 가진 것이 적을수록, 그나마 있는 것마저 빼앗길 수없다는 강박은 더 심해진다
무의식 중에 자기 장점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있어서 외부의 작은 요소도 위협으로 느끼고 크게 흔들린다.
사실 이건 가장 얄팍하면서도 어리석은 모습이다.


진지하게 고백하자면, 사실이 모든 이유가 한 번쯤은 나의 모습이었다.
글로 적는 지금조차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럽다. 나는 질투와 열등감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타인과 나를 줄재기하며 내면을 갉아먹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허비하곤 했다.
특히 질투라는 감정은 새까맣고 끈적끈적한 질감을 갖고 있어서, 손에서 떼어내기가 어렵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더 크게 달라붙는다.


왜 가까운 이의 성공은 유난히 불행처럼 다가오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비교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정체성을 확인한다.

멀리 있는 유명인의 성공은 동경으로 다가오지만 가까운 친구나 동료의 성취는 곧바로 나의 실패로 예견된다.
그들이 나와 비슷한 출발선에서 달려왔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저 사람도 했는데 나는 왜 안 되지?"라는 질문은 곧 자기부정으로 이어지고, 그 순간부터 타인의 성공은 나의 절망이 된다.


그런데 질투와 열등감 속에서 부러운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아무 효능감이 없다.
정말로, 진짜 아무런 효과도 없다.
도망친 곳에는 결코 천국이 없다는 말이 있다.
어디에 있든 간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지금 당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애써 외면해도. 결국 또다시 어딘가에서 그 찐득하고 새까만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그 아무 효과 없는 방식으로 사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에게 유해하기만 한 질투의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 끈적끈적한 감정 속에서 진짜는 무엇이었을까? 곱씹어보니, 확실한 한 가지가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탄한 재능 앞에서는 솔직하게 칭찬과 응원을 건네기 시작했다.


"와… 진짜 부러울 만큼 잘한다."
"너처럼 감각 있는 사람을 잘 본 적이 없어."
"언젠가 정말 잘 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밖으로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던 내 진심이 세상과 연결되며 짜릿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인정했다는 쾌감과 카타르시스, 확실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꾹꾹 참아온 진심을 말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새까맣고 찐덕거리는 감정'의 노예가 아니었다.


이런 속담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가까운 사람의 성공은 나의 기쁨이 아니라 불행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사촌이 아니더라도 땅을 사는 사람들은 차고도 넘친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매번 배를 움켜쥐며 아파할 것인가?
이런 무의미한 행동이 또 어디 있을까.
오히려 타인의 능력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세상을 더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는 분명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도 큰 도움이 될 중요한 능력이다.


지금은 새까만 질투심이 올라올 때면 억지로 부정하지 않는다.
"저 정도는 누구나 하지 뭘." 하며 깎아내리는 대신, 오히려 진심을 다해 감탄한다.
"어쩜 이렇게 잘해? 진짜 대단하다!"
심지어 "네 그런 점이 너무 부럽다. 아이고 배 아파!"라고 솔직히 말해버린다.
그렇게 가볍게 인정해 버리면 질투라는 감정은 더 이상 끈적거리지 않는다.

이 또한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기에 나를, 그리고 내 하루를 멋대로 삼킬 순 없다.
덤으로, 상대방의 쑥스러워하지만 기뻐하는 귀여운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건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다.
타인의 성공에 사로잡혀 하루를 무의미하게 탕진하는 대신, 내게 주어진 오늘에 집중하는 것.
그러다 이따금씩 질투의 악마가 귓가에 속삭일 때면 눈을 지그시 감고 이렇게 대답한다.


"닥쳐라, 깝치지 마라~"


말이 조금 거칠긴 하다.
하지만 나의 내면을 갉아먹는 악마에게 반드시 단호하게 선을 긋고 나를 지킬 필요가 있다.


늘 그렇지만, 결국 중요한 건 단순하다.
남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배 아파하기보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질투심은 언제든 올라올 수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볍게 인정하고 쫄쫄 흘려보내면 된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은 결코 약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곳곳에 숨어 있는 음침함이 서서히 걷힌다.
질투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삶은 훨씬 수월해지고, 사람은 한층 맑아진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질투를 하건, 인정을 하건 세상은 비슷하게 돌아간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부러운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냥 마음 편하게 응원하고 칭찬하자.


당신은 요즘 누구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는가?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