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당최 세상은 내가 편안하게 사는 게 꼴 보기가 싫은지, 나에게 ‘완벽한 평화’를 도통 허락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날에도 내 마음의 절반쯤은 불안하게 떨고 있다.
크고 작은 모든 고통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본 예의도 모르는지, 예고 없이 제멋대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입에 주먹을 욱여넣으며 ‘견디기 모드’에 돌입한다.
‘견디기 모드’에 오래 들어가야 하는 날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는 매일 일정량의 불편한 감정을 반드시 겪어야 하는 요상한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왜 내 삶에는 늘 약간의 긴장과 불안이 따라붙어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나는, 편안하고 고요한 환경이 찾아와도 온전히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평화로워 보여도 머지않아 깨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늘 ‘긴장해’라는 사인이 들려온다.
그래서 나는 평화를 평화라고 부르지 못한다.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지만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요, 나는 그것을 ‘가짜 평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평생토록, 오래 지속되는 ‘진짜 평화’를 늘 갈망해 왔다.
억울했다.
더군다나 나는 세상을 가볍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내가 겪는 불편하고 무거운 일들에 반드시 ‘가치’를 부여해야만 했다.
“아, 그래. 예방주사네. 생각해 보면 예방주사랑 크게 다를 게 없잖어.”
어쩌면 이 불편함이 나를 위한 예방주사 같은 건 아닐까.
진짜 아픈 날이 왔을 때 무너지지 말라고, 조금씩 미리 고통의 감각을 익히게 하는 일종의 ‘훈련’ 말이다.
오늘의 작은 불행이 내일의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매일 조금씩 불편하고 조금씩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결국 나를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렇다면 오늘의 고통은, 기꺼이 나의 에너지를 깎아가며 버틸 만한 가치가 충분해진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예방주사 맞듯이 산다.
주사는 맞을 때마다 따끔하지만, 그 덕분에 치사율은 낮아진다.
백신을 맞으면 몸이 항체를 만들어내듯, 마음도 그렇게 저항력을 키운다.
하지만 혀만은 정말 솔직했다.
나를 힘겹게 하는 일이 생기면 목구멍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첫마디,
“……개 같다.”
저만큼 적합한 문장이 또 있을까.
그야말로 개 같은 기분이다. 내가 뭘 어쨌는데 이러는 건지.
이유 없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이라면,
억울해서라도 살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무슨 일이든, 이유 없이 일어나는 현상은 생각보다 드물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다.
무엇이든지 기승전결이 있고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날의 고통 또한, 분명히 무언가를 남길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다.
오늘의 개 같았던 고통은 다음을 더 잘 버틸 수 있는 힘으로 변환되어 내 속에 저장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렇게 저장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지금 이 순간 버텨야 하는 고통은 가볍게 스쳐 지나갈 때도 있지만, 어떤 고통은 실제로 벌어진 상처만큼 못 견디게 아프다.
아마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 흠… 이제 새 살이 차오른 건가 ‘ 하며 은근히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을 버티는 건 마치 근육통이 회복하는 과정과 같다.
버티는 동안 마음의 근육은 찢어지고 손상되며, 때로는 염증 반응처럼 고통스럽게 부어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회복 과정 끝에 근육이 더 단단해지듯, 마음 또한 강인해진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나를 조금 더 믿게 된다.
‘이 정도는 버텨보았다'는 경험이 데이터처럼 내 안에 축적되고, 그것이 자기 신뢰라는 견고한 정보로 남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음 고통이 닥칠 때는 무너지는 속도가 늦춰지고, 대처는 더욱 노련해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늘 회복 과정 속에 있었다.
고통이 아직 가치로 변환되지 않은 상태.
그래서 오늘은 버티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근데 뭐 버티는 게 어디 쉬운가.
밀물과 썰물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해변에서도 두 발 중심 잡고 서 있기가 힘든데.
하다못해 파도는 방향이라도 정해져 있지, 삶의 고통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과 강도로 우리를 덮쳐오지 않는가.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을 견디고 단지 버텨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에게 수없이 '고맙다', '장하다'라고 백 번 천 번 들려주어야 한다.
이게 사람이 나이 먹어가는 과정인 듯하다.
모든 게 그렇듯, 평화로운 날보다 버거운 날에 더 많이 성숙해진다.
그러니 나의 하루에 고통이 있다면 그건 나를 해치는 독이 아니라, 미래의 나를 살리는 약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 오늘 주사 잘 참고 맞았어.”
그렇게 예방주사를 맞듯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불안과 불편 속에서 나를 지켜줄 굳은살을 만드는 중이다.
언젠가 한계치를 시험할 만큼의 고통이 닥친다 해도, 그날의 나는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낼 것이다.
설령 잠시 무너진다 해도 금방 회복하여, 마치 별 일 아니었다는 듯 ‘오늘 뭐 먹지’ 고민하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작은 고통의 흔적들이 나를 지키는 면역의 항체가 되어줄 것이기에.
… 그래도 주사가 더럽게 아픈 날엔, 기분이 개 같은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