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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Apr 04. 2020

병상일지 15

그 때는 전쟁터였다 

병상일지 15


마음이 천리길 같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긴지 이틀 째. 일반병동으로만 옮기면 그냥 뭐든 해결된다고 믿었나 보다. 일반병동이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했나 보다. 중환자실에서 밖을 나올 때는 세 가지로 나눠진다. 수술이나 검사, 일반병동 이동, 그리고 하나는 주검이다. 텔레비젼에서나 봄직했던 침대에 햐얀시트가 씌어져 나오는 것. 이 세 가지 유형을 나는 여섯 날 중환자실 복도에 있으면서 다 봤다. 이 중 두 개는 내가 겪었다. 검사와 수술로 두 번 침대째 복도로 나왔고, 그 다음 일반병동 이동이다. 사실은 이 상황이 최고의 선물이기는 하다. 일반병동으로 이동한다고 침대가 통째로 나왔을 때(하필 면회 시간이었다) 환자 지인들은 일제히 엄마 침대를 바라봤다. 면회 시간에 이동하는 것은 대부분 일반병동 이동이라는 것, 보호자는 아는 듯 했다. 교차되는 눈빛에서 참 많은 걸 담고 그렇게 이동했다.


침대째 나오면서 중환자실 당직으로 있던 레지던트 의사의 뒷모습을 보고는 그래도 반가와서 인사는 하려고 했다(당직이 두 명이었는데). "애 썼습니다. 덕분에 일반 병동으로 갑니다" 라고. 그런데 그이는 나를 모른 척 했다(이야기를 꽤 많이 해서 모를리 없다 싶은). 그이가 중환자실 오더 내렸을껄. 대장 청소 약 먹다가 그거 다 토하니 바로 중환자실로 옮기게 했던 의사였고, FRC(뭔지 몰라) 응급실에서 투입한 것을 중단하게 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인사하려고 아는 척 했는데 급하게 내 눈을 피하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드는거다. 저이가 뭔가를 잘못 판단하고 선택했나, 하는. 그런 이상한 기운이 정말 찰나적으로 지나갔다. 상상은 금물. 의료상식 없는 보호자가 뭘 알겠냐고. 그럼에도 기분이 나빴다. 그냥 "네, 고생하셨어요" 하면 되는데. 눈을 피하니. 각을 세웠던 간호사들과는 다 인사하고 나왔다. 고생하셨다, 감사하다, 는 인사를 내 딴에는 최선을 다 하고 나왔다. 그게 보호자가 할 도리니까.  


외과병동으로 이동했으나, 어제와 오늘 밤까지 아직 금식이다. 수술을 했으니 환자는 바로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한다. 그게 하루아침에 후다닥 되겠냐고. 혈압, 당뇨는 있었으나 신체 장기에 이상이 있었던 부분은 없었다. 노쇠하여 무릎 관절이 안 좋고, 뼈마디가 아픈 곳은 있었으나 장기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으나, 이제 겉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노쇠를 맞이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처음 출혈에서 대장만 그렇게 열심히 보더니 결국 소장에 구멍이 났다, 하니 보호자 입장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위 의료기관의 격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건가, 하는. 응급실 거쳐 서울을 가야했나,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지나고 나니. 중간에 지인이 병원 옮기라는 소리도 했었다. 내가 어떤 판단을 잘못한 것일까. 혈변이 나오는 환자를 다시 응급차에 실어서 전원을 하는 것이 옳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일 아침부터 미음이 올라온다, 고. 일반병동 와서도 소위 선망(처음 들은 심리학 용어)이 살짝 있다 했다. 중환자실에서는 환경과 주검에 대한 반론이었다면, 일반병동에서는 병원비 많이 나온다는 불안감이다. 거기에 내가 어제 지갑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해서 급기야 내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당신 병원비 못 내어서 집에 못 갈까 봐, 결재했냐고 계속 묻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내가 못 했다. 계속 묻는 질문에, 병원비 다 냈으니 걱정하지 마라, 하니. 그제야 안도한다. 지갑 잃어버린 결과치가 저렇게 연결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또 놀랬다. 다행히 이 증상은 오늘로 없어진 듯 하다. 안정되어 가는 것일까.


기분이 우울한 날은 늘 쫄면이 먹고 싶다 


이런 와중에 대구 후배에게서 부고장을 받았다. 올 1월에 모친 여의고, 지금 10월에 부친상을 당한 기구함을 맞았다. 점심 드시고, 조용해서 들어가 보니 돌아가셨더란다. 삶과 죽음이 2시간만에 결정났단다. 그 초상집에 나는 안 갔다. 아니 못 가겠더라. 아끼는 후배라 마음이 짠하나, 내가 덥석 조의하러 못 가겠더라고. 상주와 잠깐 통화하는데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거기 장례식장은 불과 사흘 전에 우리가 알아봤던 곳 아닌가. 죽고 사는 것, 이렇게 찰나로 움직이는구나. 살아서 자신의 주검을 제어할 수 있으면 그것은 다행인가. 심장이 총 맞은 것처럼 아프다.


오후 7시 혼자 쫄면 한 그릇을 비었다. 그 쫄면이 안 맵더라고, 희안하게.


속이 아리다. 내일은 또 오고 있다.


ㅡㅡ
국어 문법 수정은 내일하기로. 비문, 맞춤법, 띄어쓰기, 다시 읽으면 분명 보인다. 그런데 또 못 하겠다. 되다.

201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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