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메달 Apr 04. 2020

병상일지 17

병상일지를 20편쯤 쓰고, 기적으로 퇴원했다 

병상일지 17


만감이 교차한다. 엄마 응급실 가기 전에 신발 하나를 샀더랬다. 그 신발이, 딱 예후가 안 좋으니 준비하라고 한 날 택배가 도착했다. 그 신발을 박스째 신발장에 두는데 그게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고 그냥 신발이 주인을 찾을 수 있겠나, 뭐 이런 건조한 감정이 들더라고.


병원비가 엄청 쏟아졌다. 이게 오직 강의만 할 때였으면 그냥 내가 해결했다. 동생들 둘에게 얼마 나왔다고 이야기도 안 했을거다. 2009년에 골절로 수술하고 오십 일 병원에 있을 때도 꽤 나왔다. 그거 그냥 내가 해결했다. 간병인도 고정으로 안 불렀다. 강의 준비는 병원에서 하고, 강의 있는 날은 옆 침대 간병인에게 야매로 부탁하고 그 시간만큼 비용 드리고, 여튼 오십 일 꼬박을 내가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내가 일을 강의처럼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같이 일을 하고 있고, 그게 또 내가 적재적소에 업무을 나눠어야 하는 일을 하고 등등의 역할로 도저히 병원에 붙박이로 있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간병인을 고정으로 모셨고, 그 비용도 만만하지 않다. 일의 양은 더 많아졌고, 더 바쁜데 수입은 강의할 때 보다 터무니 없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 줄 모르겠다. 문화로 밥벌이 하기, 그거 다 날라리 빤스같다. 그 분야 일을 해 보니, 지식서비스는 먹물로 인정을 하는데 문화예술은 그저 날 것으로 돌아다니는 품바쯤으로 보더라. 그래서 그에 해당하는 비용은 늘 상식이하더라는 것이지.


병원은 언제나 느끼지만 참 다양한 계층이 한 업을 품고 있다. 침대를 움직이는 '여사' 님 부터 의사결정을 하는 '의사' 까지. 거기에 병원 행정을 맡는 사람들의 분주함과 단말기 앞에서 수납 하는 환자와 보호자까지. 언제나 삶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한다.


일본에 있는 친구가 전화가 왔다. 간병인 제도 이야기를 듣고 기함을 한다. 그걸 왜 보호자가 고용해야 하고, 환자 수발에 간호사나 의료진들은 뭐 하냐고. 마치 자신은 한국에서 살았던 적이 없었다는 듯이(허긴 20대에 병원 갈 일이 뭐 있겠나. 그러니 한국 병원 실정 모르겠네) 마구마구 탄식을 한다. 일본은 면회 시간외에는 보호자 출입 금지라고 하네. 소위 우리 나라에서도 하는 의료통합시스템(간호사+간병인)인 모양인데, 그게 아직 완전 보급은 안 되었으니.


큰 일 겪으면 한 뼘 성장하는데 나는 늙어버린 느낌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본질적으로 일에 대한 물음표를 또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 안에 어떤 절망이나 자괴감도 쓱 올라온다. 사는 것에 대한 물음표 백 개쯤 달면서 오늘 밤을 보낸다.


응급실, 중환자실, 일반 병실, 이렇게 거치면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개똥철학도 품었다 버렸다 했던 것 같다. 품어 봐도 개떡이고, 버려도 개떡이다, 는 생각이 참 슬프게 한다.


오늘도 지구는 돌고 있는 거? 그치그치.


ㅡㅡㅡ
베토벤의 황제교향곡이 떠 오르는 거, 이것도 뭐 쓸데없는 허영인거여?



2019. 10. 17

매거진의 이전글 후진할 지 말지는 내가 판단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