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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Apr 04. 2020

병상일지 13

사는 것 되다

병상일지 13


새벽2시쯤에 복도 노숙을 청산하고 집에 왔다. 에프킬러로 복도 의자에 뿌렸는데도 몸이 너무 가려워서 결국 집에 왔다. 더운 물에 잠시 샤워를 하고는 새우잠을 자고 5시쯤에 눈 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심장이 벌렁벌렁 한다마는 급하게 아침을 차려서 밥을 먹었다. 밥이라도 먹어야 내가 살 것 같아서.

오늘 오후에 행사가 있으니 시간 안배를 잘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천리길만리길로 움직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기 병원은 회선도 어찌나 많은지, 다양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는데 전화가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주치의쌤이 보호자 찾는다. 어제까지 좀 괜찮던 혈변을 다시 보기 시작하니 중환자실로 오란다. 마음이 덜컥하면도, 무슨 심정지는 아닌거지.  

전화를 받고 집에서 내려오면서 노트북을 사무실에 던지고 왔다. 혹이나 오늘 행사에 수정할 것이나 자료나 뭐든, 프린터가 연결된 내 놉북이 현장에 있어야 후배들이 와도 뭔가 부탁을 하겠다 싶어서 던지고 나왔다. 그 와중에도 과테말라와 이가쳬프, 콜롬비아 브렌딩한 커피를 두고 왔다. 어제 사무실에서 보니 커피가 없더라고. 커피 서버를 깨 먹어서 대용량 커피주전자를 가지고 나왔다. 대접 할 게 커피 밖에 없네. 커피라도 맘껏 내려 마시셈.


얽히고 섥힌 주차장에 간신히 차를 대고 중환자실 콜을 하니 주치의샘 다른 환자 보고 있다고 잠시 대기하라고 한다. 다시 복도 의자에 앉았다. 무슨 시술을 또 해야하는지. 아니 수술이라고 했는데. 그 선택의 결정은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거 사실 환자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와증에도 어제밤은 어땠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다행히 좀 주무셨단다. 낮시간 내내 내동생과 나에게 그 난리를 쳤으니 기운도 달리고 피곤도 하겠다, 싶다. 그 난리는 없던 병도 새롭게 창궐하게 하거나, 그 기운뿌림에 스스로 지치게도 하겠다, 싶다.

여기에서 며칠 밤을 노숙했다. 중환자실 앞에는 대기실이 없다 

간호사와 보호자는 지치고 오더를 내리는 의사는 자신의 의사결정에 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할까. 어제 복도에서 응급실에서 대장내시경을 했던 의사샘을 만났다. 용케 나를 알아봐서 그간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했다. 아침 회의시간에 엄마 상황이 주제로 잡혔단다. 그래서 잠시 들었는데, 지금 상황은 주검을 지나쳐 온 환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증상이니 의사들은 덤덤한데, 보호자는 아마 당황하고 놀라울 것이란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자신의 상태가 인정도 안 되고, 용납도 안 되는. 그럼에도 보호자가 덤덤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엄마 담당주치의 교수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복도를 떠났다.


다시 기다리며 앉았다. 주말, 휴일이 아니니 병원 외래는 북적북적하고 중환자실 앞에는 잠시 11시에 있을 면회를 기다리고 있다. 밤새 안녕했을까 하고, 보호자는 확인하고. 환자는 살아서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도 의자에 앉아서 병상일지를 쓰고 있는데 잠을 두어시간 밖에 못 자서일까, 눈이 막 감긴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후 행사가 신경쓰이기도 한다.


사는 것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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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8

이 날 나는 행사를 치루었다. 프랑스 손님 초대한 톡앤뮤직...이렇게 사는 것은 물레방아 처럼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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