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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Sep 05. 2020

나의 허당에 건배한다

상상력의 끝판

나의 허당에 건배한다.

주방 창문에 흰색 발란스가 나부끼었다. 다이소에서 2천 원인가 주고 사서 1년 사용했다. 그게 어울리지 않게 하단에 주름이 잡혀서 요즘처럼 바람 많이 부니 너무 나부끼는 것이다. 그게 보기 싫어서 가위로 잘랐더니 와... 싸구려 원단이 실밥이 풀리면서 난리가 아니다. 내 아무리 털뱅이라도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찍어둔 사진이 없는 게 새삼 아쉽네).

결국 그걸 보다 못해 온라인에서 2천 원 보다는 조금 더 나가는 저 체크 발란스를 주문했다. 오자마자 비누로 빨아서 축축한 상태로 커튼봉에 넣으려고 하는데 봉집이 너무 작아서 안 들어가는 것이다. 아, 이거 불량이구나 싶었으나 이미 빨았으니 그냥 쓰자, 며 마침 집에 있는 작은 링과 핀을 꽂았다. 내 살다 살다 발란스 작은 커튼에 핀 꽂아보기는 처음이네, 집에 링과 핀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투덜거리며 핀을 꽂았다. 미싱 하시는 분이 잠시 졸았나 봐, 이렇게 시접을 두 번 접어서 박았구나, 하면서 여하튼 마무리하고 주방 창문에 달았다.

오늘 아침 마침, 상품 잘 받았냐고 묻는 문자가 와서 거기 판매처 페이지에 들어갔다. 남들은 봉집으로 잘만 달려있는데 왜 하필 내 것은 불량이 와서는... 궁시렁 하면서 남들 사진을 보니 남들은 멀쩡하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와우!!! 나는 거꾸로 달았어. 그러니까 상하를 바꾸어 단 것이다. 옷이든 커튼이든 이불이든 천 조각이 오면 일단 빨아서 쓰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일단 빨고는 상하 구분을 생각지도 못 한 것이다.

여하튼 반품 신청 안 한 것만도 해도 어디야. 반품 신청했으면 그들이 얼마나 웃었을까(ㅋㅋㅋㅋ). 이것은 오롯이 내 성격이 한몫한다. 귀찮다. 옷 일 경우 아주 작아서 못 입거나(크면 대충 구겨 입는다), 정말 깨지거나 뭐 그런 경우가 아니면 반품을 잘 안 한다. 귀찮아서. 결국 내가 상하를 잘못 보고 달고는 미싱 하는 분이 졸았나 봐,라고 상상했으니 이런 허당이 없다. 뭐 어째거든 주방 창문을 가려 주니 뭐 되었다.  제 기능은 하고 있으니.

다시 나의 허당에 건배한다. 만세다.

저 아래 넓은 봉집을 두고는 상하 거꾸로 달면서 핀을 꽂았다. 투덜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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